
6·3 조기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공공의대 설립에 힘을 싣고 있다. 의료계가 지역 민심을 의식한 정치적 행보라며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시민단체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공공의대 설립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21일 국회와 의료계에 따르면 박희승 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과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이 발의한 공공의대 설립 추진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17일에는 민주당 김남희·남인순·김윤·백혜련·서영석·소병훈·이수진·장종태·전진숙·천준호·정동영 의원 등이 함께했다.
의원들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며, 필수과목의 인력 부족은 처참한 지경”이라며 “공공의대를 통해 배출되는 의료인은 지역별 의료 수준 격차를 줄이는 한편 감염, 외상, 분만 등 수익성이 낮은 의료 분야의 공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의료개혁의 성패는 의사들이 가지 않는 분야와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를 확보하는 데 달려 있다”면서 “공공의대는 모든 국민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보편적 공공의료 기반을 구축하는 선봉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공공의대법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는 별개 사안이다. 지난 2018년 당정은 협의를 통해 서남대 폐교로 인한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지역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국회 임기가 만료되며 자동 폐기됐다.

법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할 대학·대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는 내용이 담겼다. 선발된 학생에게 국고·지자체에서 학비를 지급하는 대신 의료취약지 소재 기관에서 10년간 ‘의무복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에 민주당이 공공의대법 재추진 의지를 드러내면서 의료계와의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차기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의정갈등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공의대법은 2020년 의료계 파업 당시 전공의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정책이다.
의료계는 전남 국립의대 신설이 지연된 것과 공공의대법 추진이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내년 전남 국립의대 신설 무산에 따른 지역민 반발을 공공의대법으로 달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단 주장이다. 목포대와 순천대는 의대 정원 증원에 발맞춰 국립의대 신설과 대학 통합을 추진해왔다. 내년 3월 국립의대 개교를 목표로 했으나, 지난 17일 교육부와 대학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확정하며 무산된 상황이다. 인구 180만명이 사는 전남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곳이다.
전남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의대 설립을 위해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역의 필수의료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의사 수 늘리기만으로는 효과가 없다”며 “젊은 의사들이 지역 병원에 정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 환경과 전문 진료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만 공급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단편적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지역의료는 단순히 인력 수급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 개선과 지역 맞춤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면서 “특히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를 특정 지역에 강제로 배치하겠다는 건 개인의 직업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반면 시민단체는 공공의료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이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지역·필수의료 의사인력 확충을 위해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 정책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하고,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설립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또 “공공병원이 지역거점기관으로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국가가 인력, 재정,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고 전했다.
공공의대법 추진이 의정갈등의 새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선 “의대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가 지역 공공·필수의료 분야에 정확하게 배치되도록 해야 하지만 현재 의료개혁 정책에서 이 부분이 누락돼 있다”며 “공공의대 정책은 이 부분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공공의료에 복무할 의사들을 국가가 직접 양성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공의대법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해 11월20일 공공의대법이 심사된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공공의대법은 의대 증원 못지않게 의료계 반감이 큰 사안”이라며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듣고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