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쿠키 건강칼럼] 입원 환자의 간호와 그동안 사설 간병인이나 보호자의 몫이었던 간병까지 병원에서 책임져주는 포괄간호서비스가 확대되고, 건강보험 급여화까지 됨에 따라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간호인력 확충을 위해 간호대 증원 증가 이외에도 경력 간호사의 퇴사·이직 방지 및 유휴 간호사의 재취업 유도를 위해 근로조건 및 처우 개선, 출산·육아 등 모성 보호, 폭언·폭행·성희롱 등 인권 보호 등 다양한 요구들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의사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다’고 평가하는 학자들과 ‘곧 해결될 것이다’라고 평가하는 의료계의 시각차가 상당히 크다. 특히, 의대생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연세대 의료·복지연구소 정형선 교수 연구팀이 2012년에 발표한 '적정 의사 인력 및 전문분야별 전공의 수급 추계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0년에 국내 의사 수가 3만4000~16만1000명이 부족할 것이고, 2025년에는 부족 규모가 5만5000명에서 28만1000명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대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도 6천9백 명에서 9만6천 명까지 의사가 부족할거라고 전망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가입국 평균이 3.1명이고 독일 3.6명, 프랑스 3.3명, 일본 2.2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9명에 불과해 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반해 의료계는 우리나라 의사 수가 OECD 가입국과 비교할 때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학자들이 최근의 의사 수 증가율을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즉, 1985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나라의 의사 수 증가율은 216.7%로서 OECD 가입국 평균 증가율 40.9%보다 5배 이상 높고, 2000년 대비 2010년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 증가율이 40%로 인구 증가율인 7.5%보다 5배 이상 높아 2030년에는 OECD 가입국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의료계의 갑론을박 논쟁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의 환자입장에서 보면 의사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환자단체연합회가 2011년 입원 환자 4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3.3%의 환자가 ‘담당의사가 회진 중 머무는 시간’이 ‘2분 이내’라고 답했고 ‘의사를 대면하는 시간’에 대한 ‘만족한다’는 답변은 9.3%에 불과했다. 또한 ‘2시간 대기 3분 진료’는 외래진료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결국 의사인력 부족의 피해자는 환자이다.
우리나라 의사인력의 큰 특징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과 의료기관 종별, 지역별, 진료과별로 의사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지방 소재 병원, 산부인과·흉부외과 등 비인기 진료과의 의사 수는 늘 부족하지만 동네의원, 서울시를 포함한 수도권 소재 병원, 성형외과·피부과 등 인기 진료과의 의사 수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의사인력 정책은 단순히 의사 수를 절대적으로 늘이는 방법으로는 부족하고, 의사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의사인력 부족 해소방안으로 학자들은 의대생 입학정원 확대, 외국출신 의사 전입, 은퇴의사 활용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인구 1000명당 1.9명 수준인 우리나라 의사 수를 OECD 가입국 평균인 3.1명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의대생 입학정원을 일정수준 높이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외국출신 의사를 수입하는 방안은 우리나라 정서상 단기간 내 도입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의사의 은퇴시기를 늦추거나 은퇴의사를 활동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의과대학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는 곳이고 졸업하면 돈 잘 버는 인기 학부로 인식되고 있다.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근무처를 정하는 기준도 환자가 필요로 하는 곳이냐가 아니라 수익이 많고 근무조건이 좋으냐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의사가 비난받는 것은 옳지 않으나 아무리 많이 배출되어도 의사인력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병원 근무보다는 의원 개원에 더 관심이 있고, 지방 소재 병원은 기피하고, 인기 진료과만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성적은 최상위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돈보다는 환자 살리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공공의료 확충에 소명감 있는 의사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한때 ‘공공장학의사제도’ 도입이 사회적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는 주춤한 상태다.
정부는 공중보건의사의 감소로 농어촌지역의 의료사각지대가 늘어남에 따라 ‘공공장학의사제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의대 입학정원 외 특례입학을 허용하고 이를 통해 입학한 의대생에게 국비로 학비 전액을 지원하되 농어촌지역, 도서산간벽지 등 의료취약지에서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현재 ‘공중보건의사제도’를 운영되고 있지만 이는 남자에게만 적용되고, 병역의무 대신 3년간만 의료취약지역에서 근무하는 형태다.
환자입장에서는 최첨단 의료기술을 도입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인력을 충분히 확충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병원에서 환자안전을 담보받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사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서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건설적인 대안 도출 및 법률적,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