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올해 2월 17일 “사망”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상대방의 동여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개시 되도록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의결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지난 4월 28일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일명, 예강이법(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신해철법(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불리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포함한 의료분쟁조정법이 심의되었다.
사진=지난해 12월 16일 국회 앞에서 예강이 엄마 최윤주 씨와 신해철 씨 부인 윤원희 씨가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2014년 3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 이외 2015년 11월 3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신해철 씨 유족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개최하며 대표발의를 했고, 국민의당은 안철수 공동대표까지 나서 당론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라 법사위 전체회의는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하고, 새누리당 의원이 반대하고
그런데 새누리당 김진태, 김도읍 의원이 작정한 듯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김진태 의원은 “의료인의 재판받을 권리나 직업 수행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했고,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은 “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강제수사 수준이어서 일반 법원칙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나중에 김진태 의원은 자동개시되는 의료사고 유형에서 중상해를 빼는 선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중상해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맞서면서 결국은 다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내기로 했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다를 뿐 새누리당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김정록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같은 새누리당 법사위 소속의 김진태, 김도읍 의원이 반대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에서 발의한 법안인데 새누리당에서 반대하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혜택에서 배제된 ‘의료분쟁조정제도’
의료사고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려면 고액의 소송비용과 장기간의 소송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의료과실까지 입증해야 한다. 자칫하면 수년간의 의료소송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의료과실을 입증 못해 패소까지 하면 본인 소송비용 이외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수천만 원을 낭비하는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이러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2012년 4월 8일 개원된 이래 총 5487건의 조정신청 중 43.2%에 해당하는 2342건만이 개시되었고, 3077건은 상대방의 부동의 또는 14일간 무응답으로 각하되었다. 즉,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인 조정신청자의 56.8%가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간 무응답 시 조정신청이 각하되는 의료분쟁조정법상의 악법규정(제27조제8항) 때문에 다수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이 신속하고 공정한 피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면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조정절차 자동개시의 적용범위에 ‘중상해’도 포함시켜야
특히,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중상해’를 빼고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의 적용범위를 ‘사망’만으로 한정하자는 제안은 일부 의료계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환자단체들은 이러한 김진태 의원의 제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고 절대 반대 입장이다.
‘사망’ 의료사고의 경우 유족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보다는 법원을 선호하고, 유족이 장례를 치르거나 조정절차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채무부존재확인 형태로 먼저 조정신청을 제기할 우려도 있고, 전체 의료사고 비율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료분쟁조정제도’ 이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핵심이 ‘중상해’ 의료사고다.
‘중상해’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합리적 근거가 없고, 의료분쟁조정법, 형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등에 규정된 ‘법률적 용어’이기 때문에 판단이 가능하고 이를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의 요건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상해의 구체적 범위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시민·소비자·환자단체가 함께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의료분쟁조정법 제51조에서는 의료분쟁 조정이 성립되거나 조정조서가 작성되면 사망 또는 중상해 의료사고가 아닌 이상 형사처벌를 면제하는 특례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중상해의 내용을 “피해자가 신체의 상해로 인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장애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즉, 상해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분쟁 조정이 성립되거나 조정조서가 작성되면 형사처벌 특례조항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중상해’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현재 검찰청에서 이를 하고 있다. 이미 형사처벌 특례조항 적용을 위해 ‘중상해’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중상해’ 의료사고를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의 요건으로 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앞으로 19대 국회를 꼭 20일 남겨두고 있다. 법사위에서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56.8%가 혜택에서 배제된 절름발이 신세의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의 적용범위도 “사망 또는 중상해”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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