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동네의원 경시풍조”, “중소병원 건너뛰기”, “대형병원 쏠림현상”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환자 관점에서 쉽게 설명한 3가지 문구이다. 이러한 진단에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 모두 부인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미래가 없다는 것에도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해법에 있어서는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의 시각이 너무 다르다.
◇메르스 후속대책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운영
정부가 올해 1월 15일 보건복지부, 공급자, 수요자, 학회, 전문가 및 연구기관, 공공기관 등에서 추천받은 20명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구성했다. 현재 5차 회의까지 진행되었고 6차 회의 때부터는 의료전달체계 해법으로 협의체에 제안돼 논의하기로 결정한 구체적인 항목에 대한 본격 논의에 들어간다.
협의체 회의 중에 중소병원협의회와 학회 간에, 개원의협의회와 전문가 간에 논쟁이 있기도 했고, 위원을 추천한 단체와 기관에 따라 해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협의체 논의가 꽃밭길이 아닌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가 메르스 후속대책으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고, 1차 회의 때 ‘협의체’ 논의에 대한 관심의 표시로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참석했고, 협의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강립 보건의료정책관은 회의 때마다 협의체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이 나오면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행정력은 ‘수가인상’과 ‘국고지원’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관한 국민적 관심도 높고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는 이때가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해가 서로 대립되는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 모두가 어느 한쪽에만 베스트인 ‘최선’은 서로 양보하고 ‘차선’의 합의점을 찾는 지혜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메르스극복국민연대 주최 ‘소비자 중심의 의료전달체계 세미나’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 지난주에 발생했다. 지난 3월 23일 메르스극복국민연대 주최로 ‘소비자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위한 과제와 방안 모색 세미나’가 열렸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가 ‘변화한 의료환경에서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필요성’ 주제로, 한림의대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는 ‘소비자 요구에 기반한 일차의료 역할과 활성화 방안’ 주제를 발표했다. 이어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노동조합, 기자, 전문가 등 6명의 패널토론이 있었다.
[사진] 메르스극복국민연대는 지난 3월 23일 서울대병원 의과학관 5층 대회의실에서 <소비자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위한 과제와 방안 모색 세미나>를 개최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가 기존의 “의사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고, 동네의원 살리기도 “기관 중심”이 아닌 “기능 중심”으로, 주치의 역할도 “문지기(Gatekeeper) 역할 중심”이 아닌 “조정자(Navigator) 역할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러한 주장을 시민단체·소비자단체·환자단체 활동가가 이난 의사 신분의 전문가들이 했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었다.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장은 “동네의원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차의료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고 “복합상병이 융성하는 현 상황에서 환자가 여러 질환을 종합적으로 진단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은 보다 특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주치의제를 도입해 의료기관을 강제로 정해 주거나 아니면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네의원 살려야 하나…일차의료 살려야 하나, 논쟁
문제는 한 언론에서 권 본부장의 이러한 주장을 “동네의원 꼭 살려야 하나?”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의 기사로 보도했다. 이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링크하고, 권용진 본부장에 대해 아래와 같은 비난글을 올리면서 “동네의원 살려야 하나, 일차의료 살려야 하나” 논쟁을 촉발시켰다.
“동네의원/중소병원 꼭 살려야 하나? 복합상병이 융성하는 지금 여러 상병을 살피고자 대형병원에 가는 게 적절하다”와 같은 주장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 위원이며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 본부장이자 전 서울시립북부병원장, 그리고 오래 전 의사협회 대변인을 한 권용진 본부장은 그런 주장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이 기사가 오보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분히 악의적이다. 맨 마지막의 “이 기사가 오보이기를 기대한다”는 글은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제기” 멘트다. 해당 기사 타이틀 이외 본문 내용을 읽었다면, 동일한 내용을 다룬 타 언론매체의 기사를 확인했다면, 대한의사협회 회장까지 하셨던 분이 기관 중심의 동네의원과 기능 중심의 일차의료의 차이점을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악의가 없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노 전 회장이 의사협회장 시절에 복지부에 ‘일차의료 살리기 협의체’를 제안하는 등 ‘일차의료 살리기’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권용진 본부장이 이를 흠집 내었다고 생각하고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다.
논란이 됐던 해당 기사는 삭제됐지만 제5차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회의에서 의료계에서 추천한 한 위원이 이 기사 내용을 근거로 권용진 본부장의 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의사협회도 ‘동네의원 꼭 살려야 하나?’라고 망언한 권용진 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해당 기사의 취재원이 되었던 ‘소비자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위한 과제와 방안 모색 세미나’에 패널토론자로 직접 참석 했었고,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회의에 환자단체 추천으로 참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동네의원이 아닌 일차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권 본부장의 주장이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페이스북 논란, 의료계 추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위원과 의사협회의 권용진 본부장 협의체 사퇴요구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권용진 본부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 의료계의 추천을 받은 위원이 아니라 소비자 관점에서의 전문가 위원으로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권 본부장이 ‘의사’라는 면허가 있고, 현재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며, 과거 병원장과 대한의사협회의 대변인을 했다는 이유로 의료계 대변자가 아닌 전문가로서 피력한 소비자 관점에서의 의료전달체계의 개선방안과 주장들을 의사협회가 폄하하고 협의체 위원 사퇴까지 요구하는 모양새는 옳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환자의 원하는 동네의원은 ‘좋은 일차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
환자 입장에서는 일차의료를 ‘동네의원에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라고 정의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이는 의원급 의료기간 총진료비 점유율이 2001년 41.4%에서 2010년 28.4%로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총진료비 점유율은 32.1%에서 44.8%로 증가한 통계자료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환자들은 집에서 가깝고, 비용도 저렴하고, 대기시간도 짧은 동네의원을 떠나 집에서 멀고, 비용도 비싸도, 대기시간도 긴 종합병원으로 향하는 것인가? 이는 전문의 동네의원 개원 증가,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의 과도한 경쟁, 종합병원의 외래환자 진료 증가 등 의료환경의 변화뿐 만 아니라 대중교통의 발달 및 자가용 소유자 증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증가, 의료정보 접근권 확대 등 환자의 의료이용 형태의 변화를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째, 우리나라에는 단과 전문의 동네의원들이 너무 많다. 중소병원이나 대형병원에 있어야 할 전문의들이 대거 개원을 하면서 병원에는 전문의가 부족하고, 동네의원에는 전문의가 넘쳐난다. 이에 반해 환자들이 원하는 일차의료는 전문의가 수련한 질환 치료를 넘어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 관리, 질병 예방, 정신 및 정서적 스트레스·식습관·운동·수면·건강식품 등의 건강 상담에 까지 이르고, 환자와의 신뢰관계 형성을 위한 인격적 진료와 환자 눈높이에 맞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까지 욕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차의료 관련 다양한 기능을 포괄하고 지속적 관리와 인격적 진료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일차의료 관련 전문적인 교육과 수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들이 기대하는 동네의원의 본질적인 기능은 경증질환을 치료하고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 관리에만 그치지 않는 것과 ‘주치의제도’에서 강조하는 문지기 역할(Gatekeeper)이 아닌 질병치료, 만성질환관리, 질병예방, 건강상담 등에 관한 조정자 역할(Navigator)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높은 실손의료보험 가입율과 통합적 의료정보의 부재도 대형병원 쏠림현상의 원인
두 번째, 우리나라 국민의 실손의료보험 가입률이 80%에 육박한다. 환자들이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의 경제적 부담이 적어졌고, 대형병원들도 실손의료보험 가입 환자를 선호해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현실에 정부와 의료계는 주목해야 한다.
이는 경증질환 환자가 대형병원 이용 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결국 부자들과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의 대형병원 이용은 허용하고, 저소득층 환자들의 대형병원 이용을 막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형병원 쏠림현상의 해소방안 설계 시 우리나라 국민의 높은 실손의료보험 가입률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세 번째, 환자들이 자신의 질환치료나 건강관리를 위해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선택할 때 판단의 근거로 삼을 관련 의료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경우가 허다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있는 ‘병원약국 찾기’나 해당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 대한 정보로는 환자 본인에게 적합한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을 선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각종 정보도 공공기관마다 별도로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정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평가정보, 대법원·의료분쟁조정중재원·소비자원·의협공제회 등 의료분쟁 통계정보, 의료인 성범죄 관련 정보, 의료인 관련 기본정보 등 의료기관 및 의료인 선택에 필요한 객관적인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네이버, 다음 등 대형 인터넷 포탈사이트에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 대한 잘못되거나 과장된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고, 이것이 서울 Big5병원 및 수도원 대형병원 쏠림현상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차의원을 살려야 한다”는 새 슬로건을 걸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의료전달체계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일차의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전에는 중소병원·(상급)종합병원이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의료전달체계 구축은 불가능하다. 우선 일차의료기관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 일차의료기관이란 의원, 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의 규모나 의료서비스 제공방식이 아닌 일차의료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의료기관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의사협회는 “동네의원을 살려야 한다”는 슬로건은 이제 버리고 “일차의료를 살려야 한다”라는 슬로건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질병 치료와 건강관리, 보건의료 관련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살려야 하는 보건의료기관은 동네 의원만이 아니다. 동네 한의원도, 동네 약국도 경영난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된 일차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보건의료기관을 살려야 한다. 일차의료의 기능을 강화하고 그 기능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위한 전폭적인 인센티브 제공에 반대할 국민이나 환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일차의료 살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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