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지난해 12월 말경 서울시 양천구 소재 다나의원에서 발생한 C형간염 집단 감염자들의 피해구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현직 약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현직 약사는 “의료현장에는 다나의원 이외에도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관행이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환자단체에서 보건당국에 실태조사를 강력히 요구해야한다.”고 조언하였다.
[사진] 환자단체연합회는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 감염자들의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 및 피해구제를 위해 공식 홈페이지(http://danahcv.tistory.com)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C형간염 치료 관련 내용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신청 절차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만간 ‘제2의 다나의원 사태’가 발생할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으면서도 필자는 의료현장에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다나의원의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은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 3급 및 언어 장애 4급 판정을 받아 진료행위가 육체적·정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원장 개인의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2일 언론 보도를 통해 질병관리본부가 “강원도 원주시 소재 ‘한양정형외과의원’과 충북 제천시 소재 ‘양의원’에서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감염 의심 신고가 접수되어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라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직 다나의원 감염자에 대한 피해구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현실이 가혹하였다.
‘제2의 다나의원 사태’ 주인공 된 원주시 ‘한양정형외과의원’과 제천시 ‘양의원’
다나의원 이외 의료기관에서도 대규모 C형간염 집단 감염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이 다나의원 원장만의 극히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건이라는 의료계의 변명이 더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다나의원 사태가 발생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안 되어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에 의한 집단감염 사태가 또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한양정형외과의원의 경우 역학조사 결과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자가혈소판 풍부혈장 치료술’(Autologous Platelet Rich Plasma Application, PRP)을 받은 환자 927명 중 101명이 C형간염에 집단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PRP란 환자의 혈액을 채취한 후 원심분리 해 혈소판을 추출해 환자에게 재주사하는 시술이다. 원심분리 할 때 쓰는 ‘키트’는 플라스틱으로 소독이 안 되기 때문에 사용하면 버려야 한다. 한양정형외과의원에서 이 ’키트‘를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C형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PRP는 임상적 유효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임의비급여’에 해당해 의료비를 환자에게 받으면 안 되고, 만일 이미 받았다면 환자에게 환급해야 한다는 것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법원의 판단이다. 따라서 한양정형외과의원 환자들은 원장을 상대로 C형간염 감염에 따른 피해구제 뿐 만 아니라 지불한 PRP 비용까지 환급받아야 한다.
양의원의 경우 2015년 1년간 근육주사 처방을 받은 환자만 3,996명에 이른다. 질병관리본부는 1차로 1년 치 처방자료를 우선 조사하고, 앞으로 지난 10년 치 처방자료까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의하면 조사 대상이 4만여 명에 육박해 양의원의 감염 피해자 규모는 다나의원이나 한양정형외과의원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당국의 신속한 감염 피해자 확인 및 재발방지 대책 발표
지난 3개월간의 다나의원 사태 수습 경험이 있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추가 감염 피해자 확인 및 재발방지 방안을 신속히 발표하였다. 지난 2월 14일 C형간염을 3급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해 표본 감시 대상에서 전수 감시대상으로 바꾸고, 건강보험공단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빅데이터를 이용해 주사제 처방 및 C형간염 등 특정 혈액매개질환이 많은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주사기 재사용 여부 등을 현지조사 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또한 환자 또는 의료기관 내부 종사자의 공익제보 유도를 위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보건소 홈페이지에 다양한 공익신고 채널도 개설하여 주사기 재사용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현장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제2의 다나의원 사태’를 막으려면
보건당국의 발 빠른 추가 감염 피해자 확인 및 재발방지 방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다나의원 사태의 후속조치 시 발생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건당국이 명심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감염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C형간염의 신속한 치료이다. 다나의원 집단 감염자의 경우 고가(12주 약제비 약 4,600만원)의 만성C형간염치료제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화가 언제쯤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구제를 위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신청이나 법원의 민사소송 진행도 더딘 상태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집단 감염 피해자들을 일반 의료사고 피해자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그동안 뒷짐만 졌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법률적·행정적 지원을 통해 신속한 피해보상과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주사기 재사용 등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의료행위와 관련한 환자 및 의료기관 내부종사자들의 공익제보를 활성화하려면 중동호흡기증후군(일명, 메르스) 사태 때처럼 질병관리본부에 3자리 번호의 핫라인을 개설해 운영해야 한다.
셋째, 소규모 의료기관의 내부종사자가 공익제보를 하면 대부분 신분이 노출되어 퇴사를 강요당하거나, 타 의료기관 재취업 거부 등 직업상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한다. 퇴직을 고려한 고액의 ‘공익신고 포상금제도’를 도입해 내부 종사자들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공익적 결단을 주저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의로, 장기간, 반복적 다수 피해자 발생시키는 주사기 재사용 의료인은 면허 박탈해야
넷째, 의료인이 다나의원이나 한양정형외과의원 등과 같이 고의로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해당 의료인의 면허를 박탈하는 의료법 개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95명의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를 일으킨 다나의원 원장에게 비도덕적 의료행위, 무면허의료행위 등을 병과해서 105일의 면허정지 행정처분만을 내렸다.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이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2013년 라스베이거스의 한 병원에서 주사기 재사용으로 100여 명의 C형간염 집단감염이 발생하였을 때 해당 의사에게 2급 살인죄를 적용해 종신형으로 처벌하였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행정적·형사적 수단을 이용해 해당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을 일벌백계(一罰百戒)하여 앞으로 의료인들이 다시는 주사기를 재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나의원에 이어 릴레이로 이어지는 한양정형외과의원과 양의원의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간염 집단 감염 사태를 접하며 의료인 면허제도에 대한 환자들과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추락한 의료인에 대한 국민과 환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뼈를 깎는 자정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의성 있는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의료인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퇴출하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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