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의 자녀들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우리나라에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여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사진] 2008년 2월 발생한 김할머니 사건은 우리나라에 ‘존엄사법’ 또는 ‘웰다잉(Well-Dying)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법 제정 논의를 촉발시켰다.
그로부터 7년 10개월 만에 ‘존엄사법’ 또는 ‘웰다잉(Well-Dying)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하, 연명의료법)’이 지난 12월 8일과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각각 통과했다. 오늘(21일) 예정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시행된다. 그동안 ‘연명의료법’ 제정 필요성에 관한 목소리를 내어온 환자단체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족전원의 합의로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의사표시 대리 허용
의료기관에서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담당의사가 환자에게 그 내용을 확인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으면 환자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 일명, 임종 과정에 접어들었을 때 환자가 비록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학적 시술 시행 여부에 관해서는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르는 것이 환자 본인의사 존중 차원에서 타당하다.
문제는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모두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종 과정에 접어들었고 의사능력마저 잃어버려 연명의료에 관한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을 경우에 발생한다.
‘연명의료법’의 가장 큰 특징은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환자의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환자가족 전원의 범위에서 행방불명자 등을 제외하도록 하여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환자가족 전원의 신속한 의사표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즉, ‘연명의료법’은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의사가 분명하게 표시된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에 따르도록 했고, 불분명한 경우에는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환자의 의사표시를 대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환자의 의사 추정 허용
‘연명의료법’은 여기서 더 나아가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평소 의사에 대하여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 있으면 담당의사 1명과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의 확인을 거쳐 이를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도록 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능력마저 잃은 경우 환자가족 2명 이상이 환자가 평소 임종 과정에 있을 때에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일치된 진술을 가족 2인 이상이 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이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하지 않는 것 뿐 만 아니라 이미 착용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는 환자의 사기(死期)를 인위적으로 앞당기고 극심한 신체적 고통까지 주는 행위이다. 그래서 ‘연명의료법’에서는 남용 방지를 위해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진술과 배치되는 내용의 다른 환자가족의 진술이 있거나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으로 환자가 이미 사망한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낮다. 의료현장에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나 환자가족이 자신의 또는 가족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기 보다는 경제적인 부담이나 가족들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가족도 경제적인 여건만 허락한다면 연명의료를 계속해 환자가 조금만 더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이고 현실이다.
따라서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평소 의사에 대하여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무조건 추정해서는 안 되고 일기, 유언장, 녹취록, 영상 등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절차를 추가해 환자가족들이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결정을 남용하는 사례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연간 약 15만 명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들이 미래의 연명치료 중단을 대비해 객관적 자료를 남겨두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법제화 되어도 극소수의 환자만 대상이 될 거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명의료법’에서는 2010년 ?사회적 협의체 합의안?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로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의 의사표시를 대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기, 유언장, 녹취록, 영상 등 객관적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할 것이 아니라 가족전원의 합의에 의한 연명치료결정에 관한 의사표시 대리 절차를 거치도록 하면 된다.
또한 ‘연명의료법’이 제정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는 문서의 작성이 문화로 정착될 것이다. 무엇보다 연명치료 중단 자체를 생명권 본질의 침해라며 강력히 반대하는 종교계의 의견을 고려한다면 의료계가 연명치료결정의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의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명의료법의 전제조건은 안정적인 호스피스-완화의료 환경 조성
‘연명의료법’의 전제조건이 있다. 안정적인 호스피스-완화의료 환경의 조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호스피스 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2011년 기준으로 전국 43개(상급종합병원 12, 종합병원 21개, 병원 4개, 의원 6개)에 불과하고 병상 수는 대상 환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렇듯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없는 의료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연명의료법’이 자칫 남용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이번 ‘연명의료법’ 제정이 호스피스-완화의료 환경조성과 함께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실제적으로 보장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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