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일명, 예강이법·신해철법 들어보셨나요?
초등학교 3학년 전예강(만 9세) 양은 사흘 전부터 시작된 코피 때문에 동네 내과, 이비인후과, 종합병원을 거쳐 2014년 1월 23일 오전 9시 50분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예강이는 7시간 만에 사늘한 주검이 되었다. 유족은 확보한 의무기록지와 CCTV를 검토한 결과 예강이가 의료진의 잘못된 판단, 늦은 수혈, 전공의의 미숙한 요추천자 시술 등으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유족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해당 대학병원의 거부로 각하되었다. 유족은 원하지 않았던 민사소송을 부득이 진행 중이고, 홈페이지(http://www.iamyekang.com)를 개설해 모든 진료기록을 공개해 놓고 양심적인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기다라고 있다. 병원 앞에서는 ‘진실규명 및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을 위한 릴레이 1인 시위까지 전개했다.
이러한 예강이 유족의 활동을 지켜본 의료사고 피해자들과 환자단체들은 오제세 의원이 국회에 대표 발의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중재조정법)’ 제27조 개정안을 ‘예강이법’이라고 부르면서 현재까지 응원하고 있다.
*사진=대학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 만에 사망한 아홉 살 전예강 양 가족은 사망원인을 알고 싶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각하되었다. 예강이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공식 홈페이지(http://www.iamyekang.com)를 개설해 모든 진료기록을 공개해 놓고 양심적인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일명, 예강이법) 개정운동을 추진하고 있다.(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의료사고 피해자가 넘어할 세 가지 산
예강이 엄마 최윤주 씨는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에 대해 “고소나 소송요! 저희는 전혀 생각 없어요. 예강이 심장이 멈추었을 때 침대 위에 올라가 2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심폐소생술 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보면서 다 용서 했어요. 저는 예강이가 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부검을 하지 않은 예강이 가족으로서는 형사고소나 민사소송 이외에는 예강이 사망의 진실을 밝힐 다른 방법이 없다. 결국 대안으로 ‘감정부’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을 통해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병원의 거부로 조정신청은 각하되었고 예강이 가족은 2014년 6월 19일 민사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진료기록 위조사실도 발견되어 현재 형사고소도 준비 중에 있다.
의료사고가 의심되어 피해자나 유족이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세 개 있다. 첫째, 고액의 변호사 비용이다. 의료소송은 변호사 비용이 착수금만 500만 원 이상이다. 소송에서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둘째, 장기간의 소송기간이다. 1심만 평균 2년 6개월이 걸리고,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까지 받으면 5~6년은 족히 지나간다. 셋째, 의료과실의 입증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피해자가 의료인의 과실 및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려면 고액의 변호사 비용과 장기간의 소송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의료과실 입증이 가능해야 한다. 자칫하면 수년간의 의료소송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의료과실을 입증 못해 패소까지 하면 본인 소송비용 이외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수천만 원을 낭비하는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상대방 거부 또는 14일간 무응답 시 조정신청 각하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이러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분쟁조정중재법이 제정되어 2011년 4월 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을 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3달~4달의 단기간 내에 의사 2명, 현직검사 1인, 의료전문변호사 1명, 소비자권익위원 1명으로 구성된 ‘5인 감정부’에서 객관적인 감정까지 해준다. 민사소송 시 문제였던 고액의 소송비용, 장기간의 소송기간, 입증의 어려움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발행한 ‘2014년도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에 따르면 피해자가 조정·중재 신청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각하되는 의료분쟁조정중재법의 독소조항(제27조) 때문에 조정·중재 신청자의 약 54.3%가 이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은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상대방이 동의해 일단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진행되면 조정성립율은 87.5%로 아주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소비자단체·환자단체에서 의료사고 상담 시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않는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조정·중재 신청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데 며칠이 걸린다. 이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을 했는데 만일 상대방이 14일 동안 무응답 해서 조정신청이 각하되면 피해자나 유족들은 20일 이상을 허비하게 된다. 그 사이 피해자나 유족들의 소송 의욕은 떨어지고, 상대방인 의료기관은 그 기간만큼 소송을 준비할 시간을 벌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의료전문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가 도입된 한국소비자원에 조정신청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국회는 예강이법·신해철법을 심의하라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도입하면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이 남용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에게 과도한 행정적 부담이 생긴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구제제도 중에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 한다고 구제신청을 각하하는 제도는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가 유일하다. 언론중재위원회, 환경분쟁조정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 타 분쟁조정제도는 모두 조정신청이 있으면 자동으로 조정절차가 개시되고 최종적으로 조정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상의 이러한 독소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2014년 4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2015년 11월 4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각각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제는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만 되었고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번도 심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제19대 국회가 내년 4월 13일 폐회되면 의료분쟁조정중재법 개정안도 자동 폐기된다.
의료사고 피해자 중에서는 고액의 소송비용을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사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의 문을 두드리지만 의료기관이 동의하지 않아 각하되면 변호사 비용을 부담할 형편이 안 되는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은 결국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형사고소를 선택하게 된다. 아니면 머리띠 두르고 병원 앞에서 집회나 시위를 하다가 업무방해죄와 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 되어 전과자가 되기도 한다. 의료인이 형사고소를 당하면 실제 형사처벌을 받기도 하고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수사기관 조사와 법원 재판으로 큰 고통을 겪는다.
◇‘사망’이나 ‘중상해’ 의료사고만이라도 자동 개시하라
의료분쟁조정중재법 개정안의 다른 논점들은 모두 내년 4월 13일 이후 제20대 국회로 넘기고, 이번 제19대 국회에서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만이라도 꼭 도입하는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처럼 의료분쟁 조정신청 남발이 우려된다면 적어도 법률적 판단이 가능한 ‘사망’이나 ‘중상해’의 경우로 그 범위를 제한해서라도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 내홍으로 12월 임시국회 개원이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있지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의료분쟁조정중재법 개정안을 꼭 상정해 심의해야 한다.
대중가수이면서 독설가로써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마왕 신해철씨가 작년 10월 27일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그의 부인 윤원희씨와 팬클럽 회원들, 남궁연씨 등 지인들이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지난 11월 23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실과 함께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일명, 신해철법)을 가졌다.
지난 11월 23일 MBN 8시뉴스 ‘김주하의 진실’에 고 신해철씨 부인 윤원희씨가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김주하 앵커가 “가장 힘드셨던 것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윤원희씨는 “네, 정보도 알 수 없고, 자료를 구하기도 너무 힘들고, 재판이 시작이 돼도 또 증거 불충분이 되지 않을까 이런 걱정도 많이 들고. 안 그래도 어제 애기 아빠가 2002년에 선거유세 했던 영상을 봤었는데요, ‘2002년에 아빠는 겨울에 뭐하고 있었어?’라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그때 음악만 할 수가 없어서 나왔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 영상을 보기 전에도 아이들이 ‘아빠 1주기 때 엄마 뭐했어?’라고 물어본다면, ‘엄마는 울고만 있었어’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비슷한 일이 아이들의 세대에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변했다.
딸 예강이를 하늘나라에 보낸 엄마 최윤주씨는 작년 6월 30일 의료사고가 발생한 대학병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때 “왜 1인 시위를 시작하셨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하늘에 있을 예강이가 자기의 억울함을 엄마가 나와서 이렇게까지 용기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저희 예강이 의료사고를 이 병원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예강이와 같은 피해사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싸우기 위해 나왔어요”라고 답변했다.
고 신해철씨 부인 윤원희씨와 고 전예강 양 엄마 최윤주씨가 국회로, 거리로 나와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도입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이 모든 장면들을 전 국민들이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다. 이제는 정말 국회가 응답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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