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1988년 출범 이후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사전검열금지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왔다. ‘사전심의’라는 단어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헌재는 영화 사전심의, 음반 사전심의, 방송광고 사전심의 등에서 줄줄이 위헌결정을 하였다. 최근에는 ‘의료광고 사전심의’도 위헌결정을 하였다.
[사진설명] 헌법재판소는 지난 12월 23일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였고,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에서 각각 운영 중이던 의료광고심의위원회 활동은 모두 중단되었다.
◇의료광고 사전심의도 사전검열에 해당해 위헌결정
헌재는 지난 23일 “상업광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의료광고도 헌법 제21조 제1항의 표현의 자유의 보호 대상이 됨은 물론이고, 동조 제2항의 사전검열금지원칙도 당연히 적용되며, 각 의사협회와 같은 민간심의기구가 사전심의를 담당하는 경우에도 행정권의 개입 때문에 그 사전심의에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행정기관의 사전검열에 해당한다”며 사전심의를 받지 아니한 의료광고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의료법 관련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였다.
이에 반해 조영호 재판관은 “사전검열금지원칙은 헌법이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전검열을 금지하는 목적에 맞게 한정하여 적용해야 한다. 의료는 국민 건강에 직결되므로 의료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의료광고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또한 의료광고는 영리 목적의 상업광고로서 사상이나 지식에 관한 정치적·시민적 표현행위 등과 관련이 적다. 따라서 의료광고와 같이 규제의 필요성이 큰 표현에 대해 입법자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보건·건강권 모두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사전심의절차를 법률로 규정하였다면, 이에 대해서는 사전검열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라며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헌재의 위헌결정이 있은 후 곧바로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에서 각각 운영 중이던 의료광고심의위원회에서의 의료광고 심의는 일단 모두 중단된 상태이다. 헌재의 위헌결정이 있은 이상 의료법상의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도’는 더 이상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의료광고에 대한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업광고인 의료광고에 사전검열금지원칙 적용은 신중해야
민주주의 사회를 상징하는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헌재가 철저히 보호하는 것에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조영호 재판관의 반대의견처럼 영리 목적의 상업광고인 의료광고에 사상이나 지식에 관한 정치적·시민적 표현행위를 보호하기 위한 절대적 사전검열금지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상업광고인 의료광고도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으나 동조 제2항의 사전검열금지원칙을 적용하기 보다는 헌법상 일반적 기본권 제한의 원칙인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근 허위·과장 의료광고로 미용성형수술, 척추관절수술 등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남용되는 것이 사회적 이슈이다. 또한 의료광고를 보고 몰려드는 환자들을 유명 대표원장 혼자 모두 수술할 수 없어서 수술실에서 환자가 마취되면 집도의사가 아닌 일면식도 없는 유령의사가 대신 수술하는 유령수술이 성행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의료광고에 한해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의료법상 입법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라고 할 수 있고,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반되지 않는다.
◇의료인·정부·시민사회단체의 불법 의료광고 사후 관리감독 강화해야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도’는 그동안 의료인·정부·시민사회단체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의료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료광고가 의료법 제56조 상 금지되는 의료광고행위에 해당하는지 사전 스크리닝(Screening)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쟁 의료인 입장에서도 의료광고가 사전심의를 받아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불리할 것도 없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도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도를 통해 의료법 상의 금지되는 의료광고가 사전에 걸러지면 사후 관리감독 및 모니터링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그러나 헌재가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함에 따라 의료인·정부·시민사회단체 모두 괴로워졌다. 앞으로 의료인은 자신의 의료광고가 의료법 상 금지되는 의료광고에 해당되는지 스스로 점검하거나 별도의 비용을 주고 전문회사에 검토를 의뢰해야 한다. 또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타 의료인의 불법 의료광고행위까지 찾아서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불법 의료광고를 적발하기 엄청난 행정력을 들여야 하고, 시민사회단체도 불법 의료광고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의료법에서는 의료광고 사전심의 대상으로 지하철 전동차 객실 외부는 포함하지만 객실 내부는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하철 전동차 객실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의료광고는 모두 사전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허위·과장 의료광고가 상당수이고 이로 인한 피해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와 광고업자인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최신 요실금 수술법, IOT, 간편시술, 비용저렴, 부작용無”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의 사전심의를 받지 아니하고 의료광고를 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약식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의료광고 사전심의 제도’가 헌재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부작용無’라는 문구는 의료법 제56조 상 금지되는 의료광고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어쨌든 헌재는 ‘의료광과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였다. 그렇다고 정부가 전국의 수 만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료광고를 사후적으로 관리·감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불법 의료광고 신고 포상금제도’ 등과 같이 전 국민이 의료광고 감시자 역할을 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에 대해 적극 고민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의료광고심의위원회를 운영했던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도 불법 의료광고로 적발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징계 등 자율 감독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도 ‘불법 의료광고 신고 콜센터’를 운영하거나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불법 의료광고 근절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합해 우리나라에 올바른 의료광고 문화를 정착시켜 의료인이 광고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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