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V 감염 증가…항체주사 도입했지만 찾기 힘든 ‘접종 병원’

RSV 감염 증가…항체주사 도입했지만 찾기 힘든 ‘접종 병원’

기사승인 2025-06-30 06:05:03
최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항체주사가 국내에 도입되며 예방의 길이 열렸지만 이를 관리할 코드가 없어 병의원에서 접종이 어려운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 사례가 급증하면서 영유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RSV 항체주사가 국내에 도입되며 예방의 길이 열렸지만 이를 관리할 코드가 없어 병의원 현장에서는 접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30일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3월(1~12주) RSV로 입원한 환자는 3387명으로 2023년 같은 기간 2083명 대비 약 62% 급증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개인위생 관리가 느슨해지고 마스크 착용이 줄면서 잠잠했던 호흡기 감염병이 다시 유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입원 환자는 4533명에 달했다.

RSV는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급성 호흡기 바이러스로 한 번 감염되면 평생 재감염될 수 있다. 특히 영유아는 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RSV는 치료제가 없어 예방이 가장 중요한 대응책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와 학회에서는 생후 초기 RSV 예방 접종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정부 역시 RSV 백신 접종 지원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서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접종 가능한 RSV 예방의약품은 ‘베이포투스’(성분명 니르세비맙)가 유일하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병원에 도입됐지만 실제 접종 가능한 병의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접근성이 더욱 떨어진다. 일부 부모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베이포투스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다”는 문의 글을 올리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에 거주하는 6개월 영아의 보호자인 최승아(가명·32세) 씨는 “RSV 감염이 무섭다고 해서 항체주사를 꼭 접종하게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며 “차를 타고 2시간 거리를 이동해 접종했다”고 전했다.

베이포투스는 예방 백신과 유사한 역할을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1회 접종에 60만~70만 원 수준의 비용이 발생한다. 일부 병원은 예약제로 접종을 제한하고 있으며, 의원급 의료기관 상당수는 접종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다.

의원들이 베이포투스 도입에 소극적인 이유는 백신코드(예방의약품 관리코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질병청은 백신에 한해 예방접종등록관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을 통해 부여되는 백신코드는 예방 접종 이력 관리와 진료비 청구 등에 사용되는 고유 코드로 국가예방접종시스템과 연동된다. 백신코드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전산상 접종 이력 등록이 어렵고 향후 접종 확인서 발급이나 이상반응 보고에도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 병의원 입장에선 행정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RSV 유행이 지속되면서 항체주사 접종을 문의하는 보호자들이 많지만 의원급이 도입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항체주사는 질병청 예방접종등록사업에 해당되지 않으니까 보호자가 접종 증명서를 요구하면 별도로 증명서를 발행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베이포투스 같은 영유아 RSV 예방 항체주사가 등록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점은 문제”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항체주사를 백신과 같이 관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RSV 항체주사를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은 확산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RSV 백신(베이포투스)의 의료보험 적용’에 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RSV 백신을 보험 적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단순한 예방 차원이 아니라 전체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필수 정책”이라며 “초저출산 시대에 영유아의 건강을 위한 중요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RSV 항체주사와 관련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은 영유아 RSV 예방 접종을 국가사업에 넣었고, 미국 역시 2023년부터 어린이 백신 프로그램(VFC)을 통해 무료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RSV 항체주사를 국가예방접종사업에 포함시키기 위해선 우선 백신코드 부여가 선행돼야 한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관계자는 “질병관리청이 RSV를 4급 감염병으로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RSV 예방 접종이 관리 시스템에 포함돼 있지 않은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특히 RSV 예방을 위한 항체주사가 관리 체계에서 누락돼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관련 부처는 책임을 서로 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백신코드 부여, 보험 급여 여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보건복지부 소관”이라고 밝혔고, 질병관리청 측은 “RSV 항체주사는 백신이 아니라 의약품이기 때문에 질병청 소관이 아니며 NIP 대상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르면 10월부터 RSV가 본격 유행하는데도 예방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항체주사가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누구나 안심하고 접종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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