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도 조기진단 시대…“지역 거점 병원서 충분히 관리” [쿠키인터뷰]

희귀질환도 조기진단 시대…“지역 거점 병원서 충분히 관리” [쿠키인터뷰]

전종근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리소좀 축적 질환, 7000~9000명 중 1명꼴로 발생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 확대
“희귀질환, 사회·지자체·정부가 돌봐야 할 영역”

기사승인 2025-08-24 06:00:14 업데이트 2025-08-24 09:25:16
전종근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최근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리소좀 축적 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세포 내 노폐물을 분해하는 ‘리소좀’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리소좀 축적 질환(LSD)은 조기 진단이 중요한 희귀 유전질환이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장기 손상이 돌이킬 수 없게 진행되기 때문에 정부의 신생아 선별검사 확대와 지역 거점 병원의 진단 사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희귀질환자들이 멀리 떨어진 대형 서울 병원이 아닌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쿠키뉴스와 만난 전종근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대부분의 리소좀 축적 질환이 희귀질환이다 보니 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의료진이 증상을 보고도 LSD를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들도 신경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진단이 늦어지는 사례가 흔하다”고 말했다.

리소좀 축적 질환은 리소좀 기능에 필요한 효소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부족하거나 결핍되면 분해되지 못한 물질이 세포 안에 점점 축적되면서 진행성 증상과 기능 장애를 유발하게 된다. 현재까지 약 70종의 LSD가 보고돼 있으며 대표적으로 폼페병, 파브리병, 고셔병, 뮤코다당증 등이 있다. 발병 시기에 따라 유아형, 청소년형, 성인형으로 구분되며 7000~9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LSD 건강보험 산정특례 등록 환자는 455명으로, 이후 진단 증가를 고려하면 현재까지 5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리소좀 축적 질환은 단일 효소 결핍에서 시작되지만, 신경계를 비롯해 간·비장, 근육, 심장, 관절, 뼈, 눈, 청각기관 등 전신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예로 △고셔병은 간·비장·조혈기관·뼈 △파브리병은 손발 통증·심장·신장·피부 병변 △헌터 증후군은 얼굴 변화·골격 이상·간과 비장 비대 △폼페병은 근력 저하·호흡 곤란·심근 비대에 영향을 준다.

리소좀 축적 질환은 진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증상이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매우 비특이적이며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러 인체 기관에 동시에 침범하다 보니 일반 질환과 혼동되기 쉽고, 조기 인지가 어렵다. 일반 혈액 검사로는 확인되지 않고 확정 진단을 위해선 효소 결핍 검사나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전 교수는 “파브리병 환자는 피부 발진, 말초 부위 통증, 땀 배출이 안 되는 무한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데 조기에 진단되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 있는 의료진을 만나지 못하면 10년 이상 지나서야 진단되기도 한다”며 “보고에 따르면, 리소좀 축적 질환 환자는 평균 5~8명의 의료진을 거친 후에야 최종 진단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정부는 6가지 리소좀 축적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에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했다. 출생 직후 효소 활성도 검사를 통해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 개입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전 교수는 “신생아가 리소좀 축적 질환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검사 건수가 크게 늘었고,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아이들이 3차 의료기관으로 의뢰되는 사례도 증가했다”면서 “실제 선별검사에서 헐러 증후군 관련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 신생아가 있었는데, 이 변이의 경우 병을 일으킬지 불분명한 변이로 분류돼 현재 정기 추적 검사와 모니터링 중이다”라고 소개했다.

리소좀 축적 질환 환자의 추적 관찰은 임상 증상의 변화를 꾸준히 살피는 것이 핵심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얼굴의 외형 변화나 발달 지연 같은 신경학적 증상, 성장과 운동 능력 변화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뇌, 심장, 간, 골격계의 변화를 확인하는 영상 검사와 바이오마커 검사를 통해 체내 축적 물질 증가 여부를 평가한다. 치료는 주로 효소대체요법(ERT)이 이뤄진다.

환자의 상태를 추적하기 위해선 전문 의료기관의 역할이 중요한데, 질병관리청이 지난 3월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을 확대하며 17개 권역별 희귀질환센터가 운영되는 등 전국 어디서나 희귀질환자들이 신속하게 진단받을 수 있게 됐다. 진단지원 대상 질환은 기존 1248개에서 1314개로 확대했다. 진단검사 의뢰 지역과 기관도 확대해 기존의 비수도권(23개) 의료기관 중심에서 수도권 일부 지역까지 의료기관을 추가해 총 3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을 통해 희귀질환 의심 환자 410명에 대한 진단검사(WGS)를 지원한 결과, 검사 대상 총 410명 중 129명이 양성으로 확인됐다. 양성률은 31.5%다. 양성으로 확인된 환자 대부분은 소아·청소년(80.6%)으로, 해당 연령군에서 조기진단을 통한 적기 치료 연계 성과가 특히 두드러졌다. 증상 발현일로부터 희귀질환 진단까지 소요된 기간은 1년 미만이 19.6%(21명), 10년 이상은 25.2%(27명)로 확인됐다. 특히 진단 환자의 78%는 산정특례를 적용받아 진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전종근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최근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비수도권 3~4곳의 국가희귀질환센터를 지방에 추가 지정해 지역 내 거주지 중심의 완결형 희귀질환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대현 기자

경남·울산권역 희귀질환 전문기관과 희귀질환 진단지원 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전 교수는 “전국 3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며 비수도권 환자도 수도권 병원을 찾지 않고 거주지 인근 지정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통해 진단받을 수 있게 됐다”며 “우리 기관은 검사 지원과 결과 해석, 후속 검증을 넘어 고위험군 가족의 유전자 검사까지 지원해 환자와 가족을 포함한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 사업을 수행하면서 참여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는데 98% 이상이 ‘이 사업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고 신뢰하고 있다’고 답했다”면서 “의료진 설문에서도 95% 이상이 ‘환자들이 수도권에 가지 않고도 진단과 관리가 가능해졌다’고 평가하며 환자 신뢰와 지역 관리 체계 강화 측면에서 사업 지속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업 예산 한계로 진단지원 환자 수는 제한적이다. 실제 지원 규모는 1차 연도 400명에서 올해 800명으로 늘었지만, 34개 의료기관을 찾는 희귀질환 의심 환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그는 자원과 인력을 집중 지원할 수 있는 비수도권 3~4곳의 국가희귀질환센터를 지방에 추가 지정해 지역 내 거주지 중심의 완결형 희귀질환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지역 희귀질환자들이 고가의 치료제 비용을 덜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하고자 서울로 몰리는 현실을 해결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 교수는 “수도권에 국가희귀질환센터 또는 기관을 새로 만드는 방식은 자원과 인력이 더욱 수도권으로 집중화되는 부작용을 낳을 뿐 아니라, 희귀질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라며 “기존 17개 권역별 전문기관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 투자해 지역 희귀질환 관리체계를 꼼꼼히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 환자도 수도권과 동등한 수준의 진단·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희귀질환은 환자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지자체,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돌봐야 할 영역”이라며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희귀질환 전문기관과 소통하며 도움을 받길 바라며, 병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치료와 관리 과정에 참여해달라”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