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자산 쏠림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를 상향 조정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가운데 은행권은 과도한 규제라며 난색을 보였다. 은행이 주담대를 선호하는 유인을 축소해 가계대출을 줄이자는 취지지만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5월 가계대출은 6조원 늘어 전월(5조3000억원) 대비 증가폭이 확대됐다.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특히 주담대가 이번달 가계대출 증가분 6조원 중 5조6000억원을 차지하며 전체 가계대출 상승을 견인했다. 금융위는 “최근 부동산 시장 상황과 연계되어 주담대 증가 규모가 확대되는 점 등을 감안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금융회사의 주담대 취급 실태에 대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과도한 부동산 자산 쏠림에 은행권 ‘위험가중자산’ 재조정 제안
가계대출 대부분이 부동산 대출로 이뤄진 경제 특질은 오랜 기간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혔다. 타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부동산 쏠림 정도는 높은 편이다. 2023년 기준 국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4%로 산정돼 독일, 헝가리 등 28개국 중 6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평균인 52.9%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지난해 국내 부동산 대출 규모는 2600조원을 넘어섰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8.8%가 가계대출에 해당한다.
한국은행은 이와 같은 부동산 집중 문제가 신용시장과 부동산시장 연계를 심화해 대내외 충격 발생 시 금융시스템 취약성을 높인다고 지적한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의 최후가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창립 제75주년 기념사에서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 투자를 용인해 온 과거의 관행을 떨쳐야 한다”며 “성장잠재력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고 경기변동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의 위험가중치를 조정해 부동산이 아닌 생산성이 높은 중소기업 등으로 자금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금융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금융개혁 과제 대토론회’에서 “은행자본의 위험가중치를 조정하면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인 주택담보대출의 규제 비용이 커져 은행이 기업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의 공급을 선호하는 유인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담대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할 때 하한을 15%에서 30%로 올리자는 제언이다.
위험가중자산은 주주 환원 여력과 직결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영향을 준다. 은행 금융지주사들은 주주 환원 확대를 강조한 전 정부 기조에 맞춰 CET1 비율을 높이고 총주주환원율을 확대하는 밸류업 계획을 잇달아 발표해 왔다. 위험가중자산이 많아질수록 CET1 비율은 줄어들기 때문에 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 관리에 한층 힘을 쏟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계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대출, 특히 중소기업대출보다 낮다. 이런 구조에서 가계대출을 줄이려면 부동산 대출에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위험가중치 조정 제안의 요지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 주담대 위험가중치 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리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세에 대비해 내부 등급법상 신규취급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인 15%를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앞서 한국은행도 지난 4월 ‘부동산 신용집중의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위험가중치 차등 조정 등 자본규제 개선을 통해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 취급 유인을 억제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은행권 “추가 규제는 과도…대출 축소 부작용도”
다만 은행들은 이미 가계대출총량제 등 기존 규제로도 부담이 크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금융당국에서 요구하는 가계대출 관리안이 존재하고, 은행들은 당국이 정한 정상 범위 내에 들어와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위험가중자산을 추가 규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했다.
주담대 위험가중치 상향 조정이 대출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위험가중치가 높아지면 대출을 내어줄 때 더 많은 양의 자기자본을 쌓아야 해 은행은 주담대 공급을 줄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대출이 줄어드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대출은 당연히 늘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출 축소로 인한 영향이 서민이나 금융 취약계층에 집중될 수도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오히려 금융당국이 은행에 책임 소재를 전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