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끌어당긴다고 천안 역사인물 되는 건 아니다

[조한필의 視線] 끌어당긴다고 천안 역사인물 되는 건 아니다

기사승인 2025-08-07 11:31:03
8일까지 천안시청 로비에서 천안시청소년재단의 ‘천안 입적 독립운동가와 세대를 잇는 광복의 집’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17일까지 KTX천안아산역서 이어진다. 사진=조한필 기자

천안시청소년재단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17일까지 천안시청과 KTX천안아산역에서 특별전 ‘천안 입적 독립운동가와 세대를 잇는 광복의 집’을 열고 있다.

‘천안 입적(入籍)’이란 천안에 호적을 뒀다는 뜻이다. 독립운동가 중 만주 등 국외서 활동하다 순국하는 바람에 대한민국 호적에 오르지 못한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의 호적지를 천안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천안학연구소(소장 심재권)가 지난해부터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도대체 어떤 논리에 근거하고 있을까?

국가보훈부는 2022년 10월 윤동주, 홍범도 등 독립영웅 156인을 독립기념관 주소지에 호적 입적했고, 이후 무호적 독립영웅이 더 확인돼 현재 214인의 독립영웅을 독립기념관에 입적했다.

천안학연구소는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있으니까 결국은 이들 무(無)호적 독립운동가들은 천안에 호적을 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듯하다. 여기에는 중대한 모순이 따른다.

독립기념관은 천안에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국가기관이다. 그 기관이 천안에 있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국가적 사업’을 아전인수격으로 천안으로 끌어당기면 안된다. 시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난해 3월 천안학연구소는 독립기념관에서 ‘직계후손 없는 무호적 독립영웅 214인 본적 천안입적’ 세미나를 열었다. 심재권 연구소장은 ‘천안의 정체성과 윤동주 생가복원’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천안은 이들 독립영웅들을 공식적으로 천안시민으로 인정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윤동주 생가를 천안에 복원해 윤동주의 시와 독립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중국 용정의 현지 생가가 허물지고 폐쇄된 상태라면서,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본적지가 이전됐으니 천안에서 생가를 복원하자고 주장했다. 

그 배경에는 천안의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회장 박해환)가 있다. 박 회장은 자신 소유의 광덕면 땅에 생가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인물의 천안 끌어당기기는 대다수 시민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런 절차가 없으면, 심 소장이 우려하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우리가 하는 격이다. 달리 말하면  ‘천안판 동북공정’이 될 수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고구려 등 만주 땅에서 펼쳐진 우리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끌어당기는 걸 말한다. 

천안 입적 독립운동가 이름으로 윤동주, 홍범도와 윤동주의 사촌인 시인 송몽규가 보인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천안 입적’ 독립운동가 214명 전체 명단. 조한필 기자

세미나에서 독립기념관의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은 이 사업에 대해 “직계 후손이 없는 독립영웅들이 독립기념관에 입적한 것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현대인들과 후손들에게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후손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천안 시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천안학연구소의 무리수는 천안 과거길 복원사업서도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과거길은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는 곳(광덕면)을 지나간다. 2년 전 관련 심포지엄에서 한 옛길 전문가는 “왜 천안이 과거길을 복원하면서, 선비들이 주로 이용하던 천안삼거리 영남대로를 제쳐놓고, 이용객이 적었던 ‘샛길’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썰렁하게 했다.

윤동주 생가 복원에 대해,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지난해 3월 세미나에서 만해 한용운 마을(인제), 김유정 문학촌(춘천), 황순원 소나기마을(양평), 나아가 충남의 신동협문학관(부여), 나태주풀꽃문학관(공주)과 비교했다. 이들은 모두 그 지역 연고가 있는 문학인들이다. 천안이 깊은 인연이 없는 윤동주를 기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  ‘천안 입적’ 독립운동가 전시회가 천안시청소년재단 한상경 대표의 바람처럼  ‘많은 시민과 함께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는 어렵다. 

 천안시 광덕면·풍세면주민자치회가 2023년 10월 주최한 제1회 천안쌍령고개 과거길 걷기대회 포스터. 약도 위 부분에 이 걷기대회를 주관한 윤동주문학산촌(붉은 원내)이 보인다.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