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 악성 미분양 주택 물량이 11년1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악성 미분양 문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지방 주택의 취득세 감면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취득세 감면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3일 국토교통부의 주택 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주택 물량은 2만7013가구로 집계됐다. 4월보다 2.2%(2만6422가구) 증가한 수치다. 악성 미분양 주택은 지난 2023년 7월 이후 22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2013년 6월 2만7194가구를 기록한 후 11년11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악성 미분양의 83%(2만2397가구)는 지방에 집중됐다. 대구가 3844가구로 가장 많았으며 △경북(3357가구) △경남(3121가구) △부산(2596가구) 순이었다. 전북에선 지난 5월 악성 미분양 312가구가 새로 발생했다.
악성 미분양 주택 증가 원인으로 분양가 급등, 고금리 장기화, 주택 공급 과잉 등이 꼽힌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이후 고금리 지속과 분양가 상승, 공급 과잉 등의 영향으로 비수도권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악성 미분양은 건설사의 경영 악화를 통해 국내 경제의 체력을 떨어트릴 수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악성 미분양은 일단 건설사의 자금 회수를 가로막는다. 분양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자금 흐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악성 미분양의 대부분이 지방에 위치한 만큼 지방의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주로 영향을 받으며, 이들의 자금난은 건설 관련 협력업체와 관계 산업의 줄도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부 악성 미분양 매입 나섰지만
정부는 악성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미분양 안심환매’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지난 2008년에 도입했던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사업을 수정한 제도다. 지방의 준공 전 미분양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환매 조건부로 매입한 다음 준공 후 사업 주체가 다시 사들이는 방식이다.
여기에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인 CR리츠를 통해 지방 악성 미분양을 사들이고 있다. CR리츠는 올해 대구, 양산, 경주에서 1400가구를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다. CR리츠는 현재까지 2600가구의 악성 미분양을 매입한 바 있다.
정부가 지방의 악성 미분양을 매입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정된 재원 아래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한 상황. 이에 지방 주택 수요 활성화를 위해 취득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방으로 수요를 유인하려면 세금 부담을 줄여야 실수요자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는 조정대상지역(강남구, 서초구 등)이 아닌 경우 취득세율은 △6억원 이하 1%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 2% △9억원 초과 3%가 적용된다. 다만 지난 1월2일부터 다주택자가 지방에 위치한 공시가격 2억원 이하의 주택을 유상 구입한 경우, 취득세 산정 시 기존 보유 주택 수와 관계없이 중과세율을 적용하지 않는다. 기본세율만 적용하고 있다.
취득세 감면 찬반 의견 엇갈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취득세 감면에 대해 상반된 목소리가 나온다. 일단 감면에 찬성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취득세 감면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서도 “단순히 취득세만 낮추는 것에 그치지 말고, 분양가 인하나 악성 미분양 주택 보유 기간 동안 재산세 감면 같은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취득세 감면으로 악성 미분양 문제를 극적으로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방 악성 미분양 주택에 관심 있는 수요자에 대한 이주 지원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취득세 감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과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운영위원)는 “취득세를 깎으면 악성 미분양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원론적이다”라며 “취득세 감면을 해주면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그 전에 비싼 가격에 주고 산 사람은 더 많은 취득세를 내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미분양 주택은 시간이 지나 시장 가격이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자가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며 “이런 시장 조정 과정을 무시하고 취득세 감면을 도입하는 것은 시장 원리를 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취득세 감면은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우려도 있다”며 “악성 미분양은 근본적으로 건설사의 문제다. 시장 원리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데 세금 혜택으로 이를 덮으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