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약’ 오남용에 품귀까지…시급한 대응책 [취재진담]

‘공부 잘하는 약’ 오남용에 품귀까지…시급한 대응책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5-04-25 11:51:11 업데이트 2025-04-25 15:22:04

최근 방영된 한 드라마를 보고 기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향정신성 의약품, 일명 ‘공부 잘하는 약’을 복용하게 된 이후 놀라운 성적 향상이 이뤄진 것처럼 연출했다. 극 중 한 인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강남에선 물량이 없어 약을 못 구한다”라고 말한다. 불법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현 세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드라마는 향정신성 의약품의 잘못된 복용이 부작용 위험을 키우고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약을 구하는 방법이나 복용 후 느낀 점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점은 아쉽다. 의료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기자조차 해당 의약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드라마를 보는 동안 ‘정말 집중력이 좋아지고 각성 효과가 있는 건가’, ‘생각보다 구하기가 어렵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드라마 속 ‘공부 잘하는 약’의 실제 모델은 메틸페니데이트, 암페타민 계열의 집중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다. 이 치료제는 집중력 향상을 도와 입시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습력을 뒷받침하는 약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처방 환자 수는 지난 2019년 13만3813명에서 지난해 33만7595명으로 6년간 20만명 이상 늘었다. 이 중 30%가량은 비급여 처방으로, ADHD 진단을 받지 않은 경우를 포함한다. 특히 10~30대 연령층에서 비급여 처방 비율이 높다. 또 서울 강남 송파, 서초 등 지역의 처방 건수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정부는 현장 점검을 강화하는 등 ADHD 치료제의 오남용 사례를 단속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지난해 9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를 앞두고 적발된 온라인 마약류 불법 유통 사례는 총 669건으로, 2023년 수능을 앞두고 실시한 집중점검 때(200건)에 비해 약 3.4배 증가했다. 정부의 개입이 어려운 각종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불법 판매가 성행하고 있으며, ‘시험 잘 보게 하는 약 처방 받는 법’, ‘수험생 ADHD 약물 복용 후기’ 등의 글이 잇따른다.

사회적 인식 개선 노력도 부족하다.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선 여전히 약물의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강조하는 식의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영상이 대중에게 빈번하게 노출될수록 마약,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경계심은 떨어진다.  

ADHD 진단 허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 역시 문제가 된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현행 ADHD 진단 시스템이 구식이라 집중력이 줄었다고 느끼거나 집중력과 관련된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만 하면 비교적 쉽게 진단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약이 필요한 환자들은 피해를 입고 있다. ADHD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고 밝힌 A씨는 지난 7일 국회전자청원에서 “치료제인 콘서타와 메디키넷 등 주요 약이 대부분 품절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품귀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제약사와 병원, 보건당국은 책임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콘서타의 경우 지난해 4월과 7월, 올해 2월에 공급부족 보고가 있었다. 콘서타의 장기 품절에 따라 대체약물인 메디키넷도 손에 넣기 힘들어졌다.

ADHD 치료제의 비급여 처방 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제도적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약물 오남용을 부추기는 왜곡된 미디어 콘텐츠를 정부와 사회가 바로잡아야 한다. 무분별한 약물 묘사는 단순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허용하고 있는 미디어의 태도는, 누군가에겐 복용의 명분이자 이유가 된다. 최소한의 의학 자문 절차를 거치도록 기준을 잡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와 전문 의료기관이 함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약물 노출 장면에는 자막 경고나 안내 문구를 의무화하는 방식도 논의해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부 잘하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입을 모은다. 단기적 각성과 집중력을 좇아 향정신성 의약품에 손을 뻗는 순간, 청소년의 건강과 미래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다. ADHD 치료제는 결코 ‘정상인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약’이 아니다. 부작용과 중독 가능성을 지닌 ‘전문의약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