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 독립 막는 세대분리법, 제도 개선 길 열린다

20대 청년 독립 막는 세대분리법, 제도 개선 길 열린다

기사승인 2025-04-21 06:05:03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미혼·미취업의 만 30세 미만 청년들을 개별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20대란 이유로 ‘세대분리’에 실패한 청년들은 각종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만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이 일부 청년들을 복지 사각지대로 내몬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부모의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난 20대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청년 가구 기준에 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원 가정을 나온 청년이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보장 단위인 개별가구로 인정받지 못해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과 개선책 등을 논의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세대분리법) 시행령은 부모와 주거를 달리해도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이라면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20대 청년이 독립가구로 인정받기 위해선 결혼을 하거나 일정 소득(올해 기준 95만6805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진입 시기가 늦어지며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청년들이 줄고 있다. 

20대 청년은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 일부 청년들의 경우, 암수범죄 특성상 서류 형태로 남기기 어려워 독립가구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적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부모와 동일 가구로 묶인 20대 청년들은 각종 지원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다.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LH임대주택, 청년전세대출도 어렵다. 부모의 부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일반화해 빈곤 상태에 놓인 20대 청년들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세대분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가 개선책 마련 논의에 착수했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간담회에서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에 대한 정책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시범사업을 통해 세대분리법에 규정된 연령·소득 기준을 어떻게 개선할지 모색할 예정이다.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청년 가구를 독립된 보장 단위로 인정하는 소득, 연령 등 기준을 조정해 일부 지역부터 우선 모의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고려하고 있다”며 “전문 상담사가 20대 청년들을 개별적으로 상담해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지 살펴보는 등 대책을 강구해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낮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세대분리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강미선 282북스 대표는 “청년들의 생활 양식과 가족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며 “청년들의 자립을 보장하는 내용이 법에 반영된다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282북스는 탈가정 청년들의 모임 ‘궤도이탈’ 등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다만 해당 제도가 자칫 탈가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도 짚었다. 강 대표는 “제도가 개선되더라도 청년들이 탈가정을 쉽게 선택하지 않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쿠키뉴스는 지난해 11월 9편에 걸쳐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시리즈 기획 보도를 통해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이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빈곤 상태여도 연령 기준에 막혀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할 수 없는 ‘독립제약청년’들의 현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독립제약청년이라는 언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세대분리 기준에 대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전해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