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공원에 설치된 유니버설디자인 벤치, 이른바 ‘누구나 벤치’가 설치 1년이 지나도록 시민들의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됐지만, 시민 인식 부족과 안내 미흡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여의도공원에서 확인한 ‘누구나 벤치’는 일반 벤치와 외형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한쪽 끝이 팔걸이 없이 비어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지만, 이를 설명하는 안내문이나 표식은 현장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는 지난해 4월 ‘동행서울 누리축제’에서 해당 벤치를 처음 선보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푸르메재단이 기획하고, 유현준건축사사무소가 디자인을 맡았다. 제작·설치는 현대제철 임직원 참여기금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벤치를 인지하거나 이용 취지를 아는 시민은 드물다. 여의도공원을 자주 찾는다는 김하령(33·여)씨는 “매일 산책하지만 이 벤치는 처음 본다”며 “색도 일반 벤치와 비슷하고 설명도 없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로수나 벤치에 안내문을 붙이거나 색상을 달리하면 시민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시민은 구조적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어머니를 돌본다는 라모(50대·여)씨는 “휠체어를 벤치 공간에 정확히 대기 어렵다”며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 반영 부족에 대해 정책이 실제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 문모(50대·여)씨는 “당사자의 경험이 반영돼야 진짜 필요한 시설이 만들어진다”며 “과거 서울시의 장애인 정책을 보면 이 벤치도 단순한 상징에 그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초 시는 지난해 상반기 중 공원, 대학교, 복지시설 등 30곳에 벤치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설치된 수는 26개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관련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계획 미달에 이어 추가 설치 계획도 없어 사실상 사업이 중단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조성한 시설임에도 행정 책임의 범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서, 이용자 안내나 사후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누구나 벤치’는 현대제철이 자체 설계·제작한 것으로, 시는 설치 장소만 제공했다”며 “현재까지 10개 자치구에 26개가 설치됐고, 올해는 추가 협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이 주도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는 최근 10년간 유니버설디자인 확대를 목표로 공공공간 재구성을 추진해왔다. 2015년부터 공공공간과 건축물에 시범 적용을 시작했고, 2016년에는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