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 근절 단속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건설현장의 만연한 불법하도급 관행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한 데 따른 조치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전날부터 불법하도급 근절 단속에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건설현장의 만연한 불법하도급 관행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하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주요 단속 대상은 중대‧산업 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체의 시공 현장, 임금 체불 및 공사 대금 관련 분쟁이 발생한 현장 등이다. 단속은 11일부터 50일간 실시된다.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2022년 341명, 2023년 303명, 2024년 276명이다.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에서 건설업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53%, 2023년 51%, 2024년 47%로 산업군 중 최고를 기록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으나 건설현장 사망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건설현장 사망사고의 원인으로 불법하도급이 꼽힌다. 불법하도급이란 건설공사를 맡은 원청업체가 법을 어기고 공사를 제3자에게 넘기는 것을 말한다. 해당 건설공사의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은 자에게 하도급을 내리는 ‘무자격자 하도급’, 하도급 받은 건설공사를 재하도급하는 ‘다단계 하도급’ 등이 있다. 무자격자에게 하도급을 준 업체, 재하도급을 준 업체는 1년 이하 영업정지나 불법하도급 대금의 최대 30%를 과징금으로 부과받을 수 있다.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거나 해당 자격 없이 하도급을 받은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불법하도급은 원청이 하청, 하청이 재하청을 하면서 무자격 업체가 현장을 맡게 되는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하청 과정에서 공사비가 깎여 안전에 대한 위험을 불러온다. 지난 2021년 광주 동구 학동에서 발생한 철거현장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도 불법하도급이 지목됐다. 당시 학동4구역 재개발을 위해 학산빌딩을 철거하던 중 철거 건물이 버스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버스로 무너지면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본래 철거‧시공을 맡았던 원청업체는 HDC현대산업개발이었지만, 4차례에 걸친 하도급 계약이 체결되면서 3.3㎡(평)당 28만원의 공사비가 실제 시공에는 4만원만 쓰였다.
건설노조는 정부가 나서 불법하도급을 근절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11일 발표했다. 건설노조는 불법하도급을 근절해야 중대재해를 감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한된 정부의 단속인원으로는 한계가 있어 실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원청에게 근로계약 체결, 임금 대리수령, 불법하도급 계약서 체결 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관리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불법하도급이 적발되면 구체적 관리책임 위반으로 원청에게 강력한 패널티를 부여하고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입찰제한, 영업정지 등 중대재해에 준하는 실효성 있는 제재가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세중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건설현장 99%에서는 불법하도급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며 “원청이 하청을 주고 하청이 재하청을 주면서 공사비가 줄어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저가로 일하는 건설 노동자를 찾거나 노후 장비를 사용하는 일이 발생하며 사망사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불법하도급은 근절해야 하지만, 다른 부작용이 잇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불법적으로 일어나는 하도급은 근절하는 게 옳다”며 “다만, 공사비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공사기간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