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폭증에...한은, 기준금리 속도 조절 나설까

가계빚 폭증에...한은, 기준금리 속도 조절 나설까

기사승인 2025-07-03 06:00:07 업데이트 2025-07-03 08:23:59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오는 10일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시장에선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급등세를 보이는 가계대출·집값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속 금리 동결이 주요 변수로 꼽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 금통위는 오는 10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결정에 나선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며 통화정책의 방향타를 틀었다. 지난해 11월에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속 인하를 단행해 시장의 예상을 깼고, 지난 5월에도 경기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렸다. 

이달 기준금리 결정의 핵심 변수는 국내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 급증세다. 가계대출 추이는 한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주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다. 주택거래량 증가는 1~2개월 시차를 두고 가계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쳐왔다. 

5대 은행(KB 국민·신한·하나·우리· NH 농협)의 6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54조8348억원으로, 전월(748조812억원)보다 6조7536억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8월(9조6259억 원) 이후 10개월 만의 최대치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6월 주담대 잔액은 599조4250억원으로, 5월 대비 5조7634억원 증가했다. 증가폭은 지난해 9월(5조9148억원) 이후 최대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는 등 대출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결과다. 6월 서울 아파트 가격은 6년9개월 만에 주간 기준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며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강남 3구 아파트의 4주차 주간 상승률은 연율 기준 53.7%에 달했다. 거래량도 지난해 최고치를 상회할 전망이다. 오름세가 서울 전역과 수도권 주요 지역으로 확산돼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지난달 28일부터 주담대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등 고강도 규제를 시행하고, 1일부터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본격 적용됐지만 당분간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택 거래부터 대출 실행까지 통상 1~3개월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 주담대 기준 지난달 27일 주택매매계약 체결 건까지는 종전 대출 규정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내 인하 횟수는 성장보다는 서울 부동산 가격의 흐름 및 대출 규제 강화 조치, 스트레스 DSR 시행 결과 등 금융 안정에 달려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성장이 둔화된 것은 기정 사실이고, 성장과 금융 안정 중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더 큰 쪽은 금융 안정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은도 가계대출 급증세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은은 지난 27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과도한 금리인하 기대가 주택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추가 인하 시기 및 속도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창립 75주년 기념사에서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투자를 용인해 온 과거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금리 인하 속도조절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통화정책 기조 역시 국내 금리 동결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연준은 지난달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4.25∼4.50%로 동결했다. 연준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1월부터 4회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관망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결과 한미 금리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00%p로 유지됐다. 

한은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신정부의 관세 정책 등에 따른 수출 타격, 내수 부진 등으로 인해 금리를 낮춰야할 이유는 크지만, 연준의 관망모드에 한은도 금리 인하에 신중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은만 연속 인하에 나설 경우, 금리차 확대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과 환율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다만 시장은 이번 7월 금통위에선 기준금리가 동결되더라도 하반기 추가 인하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암울한 국내 경제 상황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따른 수출 위기, 내수 부진까지 겹치며 올해 성장률은 0%대로 예측된다. 중동 사태로 유가가 출렁이기 시작해 물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고강도 대출 규제 이후 데이터 둔화 수준에 따라 8월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연내 한 차례 인하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8월 인하 조건으로 “서울·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 차이가 +2.0% 중반에 다다르지 못하고, 7월 이후 서울 매매수급지수의 우하향 추세 형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인하 시점이 10월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지나 연구원은 “당장 7월 금통위에서는 8월 인하를 확신할 만한 상황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금융 안정을 우려하며 관망에 가까운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8월에 맞춰져 있던 금리 인하 시점은 대출 규제안의 결과에 따라 10월로 이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도  “한은은 유가와 서울 주택 안정, 재정 부양책의 영향, 미국 관세의 파급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오는 10월23일 회의까지 금리를 동결하며 관망하길 선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10월과 내년 5월·10월에 각각 기준금리를 25bp씩 인하해 연 1.75%에서 이번 금리 인하기를 종료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