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함께 살아갈 국민인데, 왜 배제되나요.”
21대 대선을 앞두고,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취재하던 중 선거 연령 제한으로 투표할 수 없었던 추윤서(17)양의 말은 많은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청소년들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미래의 유권자임을 상기시킨 외침이었다. 18세 선거권이 도입된 지도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높아졌다.
요즘 청소년들은 뉴스, 유튜브, SNS,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정치와 사회 이슈를 일상처럼 접한다. “이재명은 어때?”, “윤석열은 왜 저래?” 같은 말이 복도에서 오가는 시대다. 하지만 “많이 이야기하긴 하는데, 뭘 정확히 아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알고 싶고 말하고는 싶은데,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은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박스쿨 사태’는 하나의 경고처럼 다가온다. 대선 당시 댓글 공작에 참여한 극우 성향 단체가 서울 시내 공립초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에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은 교육계 전반을 뒤흔들었다. 민간자격증을 발급받은 강사가 학교에 들어가 정치 편향적 강의를 진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오랫동안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정치 자체를 교실 밖으로 밀어낸 학교. 그러나 그 빈틈을 채운 것은 오히려 특정 정치색을 띤 외부 단체였다. 정치 중립을 지키려던 교육 현장이 오히려 정치 편향이 스며드는 통로가 돼버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묻게 된다. ‘정치적 중립’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정치라는 주제 자체를 배제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 제도와 시민의 권리, 정부의 구조와 선거 방식, 정책 결정 과정을 배우는 것은 시민교육의 기본이다.
리박스쿨 사태는 교육이 ‘정치로부터 중립적’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이 정치를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교실이 비운 자리는 결국 누군가가 채우게 돼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특정 의도를 가진 단체라면, 그 빈틈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정치교육의 부재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 중 하나다. 학교가 남긴 공백은 외부의 편향된 단체들이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정치교육의 부재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제도적 관리의 허술함, 사회 전반의 인식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많은 청소년은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부는 만 18세 유권자로서 실제로 투표하며, 더 많은 이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탄원서를 쓰며, 사회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당들 역시 청소년을 정치의 주체로 끌어들이고 있다. 권리당원 연령을 16세까지 낮추고, 대선 경선 투표권을 부여하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참여 기회를 넓힌다고 해서 준비까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투표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행위다.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반드시 ‘배움’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치적 관점이 아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언어와 시간, 그리고 그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교실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