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한 캐릭터도 끌리게 만든다. 배우 채원빈의 강점이다.
영화 ‘야당’에서도 그랬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추락한 배우 엄수진으로 분했다. 결말까지 어느 하나 새로운 구석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더 보고 싶었던 이유는 오직 ‘채원빈’이었다.
특유의 매혹적인 분위기, 속내를 읽기 힘든 표정, 듣기 좋은 중저음 보이스, 이렇게나 많은 장점을 타고났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도망치고 싶었단다. 16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채원빈은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면서도 “제 작품이라서 마냥 재밌게 볼 수 없었다”며 ‘야당’을 개봉한 소감을 수줍게 밝혔다.
맡은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파격적인 만큼, 인물 표현과 추후 각인될 이미지에 대한 부담도 상당했을 법하다. 채원빈은 “모든 상황과 대사가 익숙지 않아서 힘들었다”며 “선배님들이 하셨던 (마약 관련) 연기도 참고하고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가장 늦게 작품에 합류하게 된 채원빈은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기쁨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고 돌아봤다. “실장님께 ‘제가 왜요?’, ‘제가 거기를?’이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그 정도로 믿기지 않는 선배님들과의 작업이었어요. 처음 뵀을 때는 이분들과 같은 화면에 담긴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어요.”
놀라움이 가신 자리에는 기대가 들이찼다. 그리고 기대는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야당’에는 강하늘, 유해진, 박해준 등 연기력도 인지도도 정평이 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선배님들의 연기를 직접 볼 수 있을 순간이 기대됐었는데,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 선배님들 모니터를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매 순간 배웠어요. 여러 테이크를 같은 에너지로 가는 유연함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영화를 보고는 ‘선배님들 참 대단하시다’ 했죠.”
특히 서사상 오상재 역의 박해준과 유대가 깊었다. 채원빈은 박해준이 극 중에서도 현실에서도 큰 힘이 돼주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선배님께서 정말 에너지가 좋으세요. 경찰서에서 우는 장면을 엄청 오래 찍어서 힘들었는데, 웃으시면서 쉬엄쉬엄하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덕분에 재밌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후배를 굉장히 편안하게 해주시는 분이에요.”

엄수진과 함께 팀을 이루는 이강수를 연기한 강하늘에 대해서는 “무해하다”고 전했다. “선배님도 현장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매 신을 어려워했었는데, 어느 부분이 고민되냐고 물어 주시고, ‘이런 건 어때’라고 제안해 주시고, 이것저것 같이 해보자 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웃는 게 맑으시잖아요. 힘을 많이 받았어요.”
채원빈의 선배들은 스크린에서 더욱 든든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아쉬웠던 점이 많이 보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뒤늦게 놓쳤던 부분이 보였어요. 부족함이 돋보이더라고요. 후반부는 영화 흐름을 타니까 그래도 집중해서 볼 수 있는데, 대본을 아니까 제가 나오는 10초 전부터 기도했어요. 큰일 났다 싶었죠. 다들 처음 보는 건 온전히 못 본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토로와 달리, 이미 그의 캐릭터 표현력은 궤도에 올랐다.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로 제61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여자신인연기상 후보에도 노미네이트됐다. “‘백상예술대상’은 처음 가봐서 너무 영광스러워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뻐요. 시기적으로 (방송 직후보다) 뒤에 하다 보니까 생각을 아예 못 했던 거라 더 기뻤어요.”
이처럼 배우로서 입지가 확고해지면서 책임감도 강해지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도전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요즘은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름을 작품에 올리게 되니까, 마음이 예전과 같을 수 없어요. 흥행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지만요(웃음). 작품 안에서 제 인물에만 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