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낮은 급여와 딱딱한 조직문화 등으로 공무원이란 직업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특히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공무원은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최근 MZ세대 공무원들의 공직사회 이탈 현상도 이를 반영하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노동절을 앞두고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공무원도 노동자로서 정당한 휴식을 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월1일은 ‘근로자의 날(노동절, 메이데이)’로 지정돼 있다. 유급휴일인 이 날, 근무를 한다면 휴일 근로수당을 받는다. 실제 국내 코스피 주식시장은 노동절에 휴장하며, 대부분의 민간기업과 은행도 쉰다. 일부 학교는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휴교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노동절은 ‘무급 휴무일’로 처리되며 정상 출근하는 날이다. 별도 수당 없이 평상시처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공무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조 박중배 수석부위원장은 “공무원들이 노동절에 쉬려면 법을 개정해 이 날을 ‘법정 공휴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절이 국내에서 법정 공휴일이 아닌 이유는 정치·사회적 구조와 노동 정책의 영향이 크다. 일각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국내 노동운동을 철저히 억압했다.
일본은 노동절을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는 날로 인식해,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중국 등 주요국들과 달리 노동절을 공식 휴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해 노동절을 맞아 “근로, 근로자는 일제강점기, 군사독재의 잔재”라며 “사람을 부리는 쪽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채근하는 용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노동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박홍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제안 이유를 “근로기준법에 따라 유급휴일로 지정하고 있지만, 노동절을 공휴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부 민간기업에서만 자율적으로 휴일을 적용하고 공무원을 포함한 관공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아 ‘근로자의 날’ 본연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민간과 관공서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세계 노동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되새길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무원노조는 정부와 지난해 교섭을 통해 ‘정부는 근로자의날(노동절) 등을 포함해 공무원의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다만 이 합의는 아직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공무원노조는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학교, 은행 등 공공기관에서도 노동절 휴무가 보편화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공무원은 여전히 쉬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 14일부터 5월1일까지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동절 휴무쟁취’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노조 김황현 기획정책실장은 “노동절 당일에도 평일과 다를 바 없이 근무한다. 은행 등 여러 공공기관들이 쉬다 보니 연계 업무도 원활하지 않아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많다”고 꼬집었다.
결국 노동절에도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공무원들의 현실은 공직사회의 변화된 세대 인식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김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