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간 이제훈의 인생은 없다” [쿠키인터뷰]

“올해 인간 이제훈의 인생은 없다” [쿠키인터뷰]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주연 배우 이제훈 인터뷰

기사승인 2025-04-18 17:26:14
배우 이제훈. 컴퍼니온 제공

“언제 개인의 행복을 찾냐고 물어보신다면, 올해는 포기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웃음).” 

시즌제 작품과 연예 기획사를 이끄는 이의 책임감은 과연 남달랐다. 눈코 뜰 새 없이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까지 완주해 버린 배우 이제훈은 자신의 상태를 ‘러너스 하이’(심박수 120회에 달리기 30분 정도를 유지할 때 힘든 느낌이 쾌감과 행복감으로 바뀌는 현상)로 짐작했다. 이 바탕에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일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14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협상의 기술’에서 산인그룹 M&A팀 팀장 윤주노로 분해 열연했다. 백발의 윤주노는 인상적인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협상 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으로 연이어 들이닥치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인물이다. 이제훈은 이러한 캐릭터를 완벽히 체화시키며, 12부까지 몰아치는 서사를 몰입도 높게 풀어냈다.

‘협상의 기술’은 윤주노가 이끄는 M&A팀이 산인그룹의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계열사 등 기업을 사고파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 이에 시청률 3.3%로 시작한 ‘협상의 기술’은 최고 시청률 10.3%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윤주노가 산인그룹의 주가를 방어하고, 빚을 상당 부분 해결했음에도, 12부까지 모든 문제가 해소되진 않았다. 여러모로 시즌2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훈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작품은 미국드라마처럼 시즌2, 시즌3, 시즌4, 시즌5까지 갈 수 있는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제작사도 방송사도 의지가 있다면 이야기를 더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커요. 저도 후속 이야기가 쓰이길 바라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에요.”

배우 이제훈. 컴퍼니온 제공

‘협상의 기술’은 믿고 보는 안판석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간 안 감독과의 만남을 고대해 왔던 이제훈은 이번 현장이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했단다.

“감독님 최근 작품들은 로맨스가 짙은데, 이 작품은 ‘하얀 거탑’과 같은 결이라서 더 궁금증이 컸고 기대감이 상당했죠. 감독님은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하시고, 이 부분이 작품에서 항상 보이는데, ‘협상의 기술’은 더더욱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항상 가짜라는 인상을 주는 것을 경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진실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인물에게 접근하고 앙상블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협상의 기술’ 역시 배우 장현성, 오만석 등 안판석 감독 사단이 대거 참여한 작품이었다. 이는 곧 출연진의 걸출한 연기와 호흡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안 감독의 작품에 처음 합류한 이제훈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분위기가 너무 즐겁고 편한데, 불안할 정도로 항상 촬영이 일찍 끝났어요.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감독님이 가지고 계신 지향점이 분명하고 계산이 명확하시다 보니까, 상황적인 오차가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그 어느 현장보다 배우들이 다 준비돼 있었어요.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해서 앙상블을 보여주니까 일찍 끝날 수밖에 없었고요. 제가 극을 리드하는 입장이니까,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현장에 갔었어요.”

‘협상의 기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가 이제훈의 백발 변신이었다. 가발을 착용하기 위해 분장에만 3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이제훈은 “분장해 주시는 분들이 고생을 너무 많이 해주셨다”며 스태프에게 공을 돌렸다. 
 
“감독님이 원하는 모습이 명확하게 있으셨어요. 시청자분들이 이질감과 불편함을 느끼실 수도 있으니까 걱정이 많았는데, 갈수록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미스터리한 느낌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이만큼 탁월한 모습이 있었을까 하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인물을 딱 맞게 입고 연기하는 것에 만족감을 더 크게 느끼면서 촬영했어요.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을까요. 필모그래피에 남길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감사해요.”

배우 이제훈. 컴퍼니온 제공

‘협상의 기술’이 시즌2로 돌아온다면, 이제훈은 ‘시즌제 전문 배우’ 입지를 더 확실히 굳힐 전망이다. 이미 그는 ‘모범택시’, ‘시그널’ 등 인기 시즌물을 이끌고 있다. 시즌제의 지속성에는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가 주요하게 작용하지만, 극을 이끄는 주인공의 역할도 상당히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제훈은 배우로서 역량을 입증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제가 드라마도 영화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취향에 대해 많이 열려 있어요.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요. 즐길 거리도 많고 쉬고 싶기도 한데,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행위잖아요. 그래서 제가 참여한 작품을 보실 때 시간이 아깝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이 커요. 이런 마음이 제가 작품을 볼 때 투영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진짜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훈은 ‘시즌제 전문 배우’답게 올 하반기에는 ‘모범택시3’로, 내년에는 ‘시그널2’로 시청자를 만날 계획이다. 행복한 비명이다. 굵직한 두 작품 촬영을 병행해야 하니 좀처럼 휴식기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이제훈은 “저를 내려놨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스케줄적으로 이렇게 돼서 제작사분들께 죄송한 마음이죠. 마음대로 저를 갖다 쓰시라는 마음이에요. ‘이제 최소 올해는 나의 인생은 없다’, ‘움직이는 대로 가겠다’ 하는 거죠. 저는 작품을 통해서 농사를 잘 짓고 싶고, 그럴 수 있는 게 너무 감사해요. 시즌제를 통해 다시금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요. 무사히, 건강하게 잘 마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토록 업계가 이제훈을 찾는 이유, 그리고 그가 이렇게 쉼도 미뤄두고 열심히 하는 이유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일을 오래하고 싶은 마음이 해답이었다. “스스로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 ‘작품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배우구나’, ‘열과 성을 다해서 자신을 갈아 넣는 배우구나’라는 것이 크리에이터들한테 전달된 것 같아요. ‘가성비도 괜찮고 쓸 만한데? 효율이 나오네’ 싶으니까 계속 쓰일 수 있지 않았나 하고요. 저는 가격을 통해서 평가받기보단, 작품을 통해서 빛을 내고 싶은 사람이어서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