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출산 여파로 소아 진료 수요가 줄면서 소아외과 의사들이 의료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증 소아환자를 치료할 전담전문의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전국 대다수 병원은 단 한 명의 전문의도 확보하지 못한 채 진료 공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소아진료 강화를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인력난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이 4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소아 외과계 의사들은 소아진료체계의 패러다임 전환과 만성적 저수가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은 대한소아외과학회, 대한소아비뇨기과학회, 대한소아신경외과학회, 대한소아이비인후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한국사시소아안과학회, 소아심장수술연구회, 대한소아마취학회 등 국내 소아수술 관련 8개 학회 임원진으로 구성된 단체다.
소아 진료를 보는 의사가 줄고 있다. 저출산, 저수가, 고위험, 법적 분쟁, 악성 민원 등 소아 진료를 기피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신규 의사보다 은퇴하는 의사가 더 많다. 전국에 소아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33명으로, 2027~2030년 매해 1명씩 은퇴할 예정이다. 소아외과 전문의 수는 50명으로, 최근 5년(2020~2025년) 간 신규 전임의가 총 11명 늘었을 뿐이다. 2027년에 2명, 2029년에 4명의 은퇴자가 나온다. 전체 소아마취과 전문의는 92명으로 이 중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64명이 몰려 있다. 소아안과는 102명의 전문의가 있지만, 이 역시 수도권에 67명이 쏠려 있다.
남소현 소아외과학회 기획위원장은 “소아외과는 대표적 공공의료이자 필수의료 영역이다. 특히 신생아나 유아기에 이뤄지는 외과 수술은 아이의 평생 건강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진료이지만, 지금처럼 외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선 기본적인 수술조차 받기 어려운 지역이 수두룩하다”며 “‘아이를 낳으라면서 정작 치료받을 곳은 없다’는 말이 환자 보호자들 사이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남 위원장은 “맹장 수술조차 제때 받지 못해 몇 시간씩 대기하거나, 공공전문진료센터마저 없는 지역에선 아픈 아이를 헬기로 서울까지 이송하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면서 “10년 전에도,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문제가 향후 10년 뒤에 반복되지 않도록 소아외과 인력난을 해소하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비뇨의학과 상황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2023년 기준 소아비뇨의학회에 등록된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 수는 전국 29명에 불과하다. 이 중 서울과 경상도권에 각각 11명이 몰려있다. 5년 후엔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가 23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임영재 소아비뇨의학회 교육수련이사는 “환자 수가 줄고 수익성까지 낮다 보니 병원에서도 소아외과 전문의를 기피한다”면서 “실제로 수도권에서 소아비뇨의학과 전문의가 은퇴하면 재고용을 하지 않는 병원이 많고, 기존 전문의들도 소아와 성인을 함께 진료하다가 점차 성인 중심으로 옮겨가는 구조다”라고 짚었다.
임 이사는 소아 외과계 전문의 부족 문제 해결책으로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에 소아외과 전문의 채용 포함 △소아외과 전용 수가 개발과 중증도 반영 수가 신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배상제 도입 △소아외과 중앙 교육 프로그램 및 지역 트레이닝 센터 구축 등을 제시했다. 그는 “수련병원과 지도전문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지방의 경우 인프라가 없어 환자도 서울로 몰리는 현실이다. 이로 인해 지방 수련병원 교육의 질 격차가 커지고 있다”라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과감한 정책 전환과 장기적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41명인 소아정형외과 전문의는 수도권에서 절반 이상(24명)이 근무하고 있다. 향후 5년 내 은퇴 예정자는 7명에 달한다. 소아청소년정형외과학회 박문석 총무이사는 “왜곡된 시스템에서 소아 진료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라며 소아 외과계 우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정책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아과 계열은 수적으로 너무 적기 때문에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라며 “단순한 수가 인상뿐만 아니라, 소아 중심의 새로운 수술명 및 중증도 체계 신설, 복잡 수술 기준 재정의, 중앙정부 내 전담사무관 지정 등이 절실하다”고 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수가 인상만으론 어린이병원의 고정적 적자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며 재정 지원과 함께 수가 책정 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현재 사용 중인 수가 책정 기준은 오래 전 의료 행위 분류를 바탕에 두고 있으며, 최신 의료 기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과에서 사용 중인 수술·진료 항목은 실제 임상현장과 청구내역 간 괴리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의료진 사법리스크 완화 문제 역시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며 “단기적 해결이 어려운 사안이더라도 정부는 필수의료 인력 재생산과 수가 체계의 구조적 문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의료계도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