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의료 인프라 공백…“전담위원회서 개혁 숙의 이어져야” [이재명 정부]

미래 의료 인프라 공백…“전담위원회서 개혁 숙의 이어져야” [이재명 정부]

기사승인 2025-06-08 06:00:07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이 로비에 걸린 병원 홍보물 옆으로 이동하고 있다. 곽경근 대기자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공의와 의대생 공백 사태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5월 추가 모집에서도 상당수 전공의가 복귀를 거부한 가운데 유급·제적 처분을 받은 의대생들까지 더해져 의료 인력의 교육·수련 공백이 장기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개혁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반면,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보다 유연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무너진 교육·수련 체계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모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의료계가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고 대통령 직속 전담 위원회를 통해 의료개혁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수련병원 추가 모집에서 대다수 전공의가 복귀를 거부하면서 수련 체계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복귀 의사를 밝힌 지원자는 소수에 불과해 실제 임상 현장의 인력 공백은 그대로 남아 있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련병원 사직 전공의 추가 모집 결과 총 860명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추가 모집에 지원한 전공의까지 합치면 지난 2일부터 수련에 들어간 전공의는 총 2532명이다. 이는 의정 갈등 이전(1만3531명) 대비 18.7% 수준이다.

의학 교육 상황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는 재학생 1만9475명 중 8305명(42.6%)을 유급, 46명(0.2%)을 제적 대상자로 확정했다. 최종적으로 유급, 제적 등 처분 없이 1학기 수업에 참여 가능한 인원은 6708명으로, 전체 의대생의 34.4% 규모다. 이 중 예과생이 2989명, 본과생이 3719명이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장기적 이탈은 인력 부족을 넘어 전문의 양성 시스템을 흔든다. 또 필수의료 기반 약화와 지역의료 격차 심화라는 연쇄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 10명 중 6명이 동네 의원급 병원에 일반의로 재취업한 상황에서 다시 수련을 이어가게 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직 또는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8791명 중 5399명(61.4%)이 의료기관에 일반의로 재취업했다. 이 중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전공의는 3258명으로 전체의 60.3%였다. 일반의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지만, 전공의 수련 과정을 밟지 않고 의대 졸업 직후 활동하는 의사를 말한다.

“의대생·전공의 복귀 문제 조속히 해결해야”

의대생·전공의 확보는 미래 의료 인프라 확충과 맞닿아 있는 만큼 의료계도 신속한 사태 해결을 바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의정 갈등 해소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복귀 문제는 조속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라면서 “이들이 교육현장과 수련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들과 논의해 정책에 반영해 줄 것을 촉구했다. 김 회장은 “의료 정책은 탁상공론이 아닌 의료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을 반영해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라며 “일방적인 밀어붙이기가 아닌 상호 존중과 소통의 자세로 국민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을 정부와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곽경근 대기자

공중보건의사들은 “젊은 의사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지역의료 첨병 역할을 맡고 있는 공보의 수급도 어렵게 됐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 동안 412명의 의대생이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이는 지난 3년간 3월 전체 현역 입대자 수와 맞먹는 규모다. 대공협은 올해 연말까지 최대 4700명의 의대생이 추가로 현역병에 입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성환 대공협 회장은 “공보의들은 전국 격오지에서 일하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지역주민들에게 필수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면서 “미래 세대 의료인의 안정적인 성장과 더불어 우리 본연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병원과 학교를 떠나있는 전공의와 의대생들 사이에선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사직 전공의 A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정부의 ‘전공의 처단’ 계엄 포고령에 젊은 의사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정부가 의료계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억누르고 대화를 단절한 결과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새 정부는 더 이상 불통과 밀실정치에 의존하지 말고, 합리적이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의정 갈등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정부 과오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1년 넘게 이어진 갈등과 소요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새 정부는 전공의·학생들이 수련병원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의협 집행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 행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의대 교수들은 복지부를 포함해 교육부, 국방부가 의정 갈등 해소 과정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국정 철학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익에 이로운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의대생이 학교로 복귀하고, 전공의가 수련병원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의료계는 교육·수련 현장을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의료개혁 전담 조직에 전문가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새롭게 구성을 이루고 숙의를 통해 개혁을 왜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방적인 개혁 추진이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진짜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며 ‘국민 중심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국가 책임 강화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보상 강화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기능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는 모두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 과제에 포함된 내용이다.

김 교수는 “전 정부에서 지역·필수의료 위기나 의료소송 문제 등 여러 사안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했는데, 새 정부도 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두고 현안들을 풀어 나가야 한다”라며 “모든 현안이 한두 달 논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 과제인 만큼 긴 호흡을 갖고 정부, 의료계, 국민이 상호 신뢰를 갖고 협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