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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말하기'는 의미있는 변화…이해와 공존 첫걸음2018-02-09 10:51:00

인류의 절반은 한 달에 약 5일 피를 흘린다. ‘생리’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귀찮은 일, 또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의 증상임에도 병(病)이 아닌 신기한 현상이다. 그런데 왜 생리하는 모습을 다룬 콘텐츠는 본 적이 없을까. 최근 사람들이 생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생리 말하기는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연대기’ 오희정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눴다.

Q.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네덜란드, 미국, 한국 친구들 7~8명으로 구성된 모임 자리가 있었다. 성정체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열띠게 생리에 관해 이야기기를 나눴던 경험이 없었다면 김보람 감독이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을 때 의아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자리의 스파크와 케미를 경험했기 때문에 선뜻 동참했다. 또 당시(2015년) 한국은 조용했지만 북미 등 해외권에서는 생리대 세금부과, 생리와 관련된 건강권 이슈가 뜨거웠었다.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Q. 생리라는 주제로 학생들부터 노인, 외국인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었나?

촬영을 시작한 때가 2015년 11월, 깔창생리대 사건이 이슈화되기 전이다. 그 전에는 사실 생리에 관한 인터뷰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없던 때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아서 초경을 시작한 아이들의 이야기도 담고자 했는 데 아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중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촬영 전에는 남자 아이들이 장난치면 어떡하지, 여자 아이들은 수줍어서 입을 다물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진지하게 임하더라. 생리용품을 보여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Q.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다들 재미있어 했다. 야한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논의였다. 의외인 것은 생각보다 아이들이 우리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어른들이 접하는 최신 정보를 아이들도 똑같이 혹은 더 빨리 접하고 있다. 생리컵이 무엇인지도 다 알더라. 문제는 잘못된 정보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한 아이는 처녀막이 깨진다고 표현하더라. 미성년자가 포털사이트에 처녀막을 검색하면 유해정보를 차단하는 그린캠페인으로 검색이 막힌다. 포털에서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처녀막 재건술같은 광고뿐이다. 왜곡된 성지식을 배울 수밖에 없다.

Q. 교육의 중요성도 느꼈을 것 같다.

몸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성교육과는 다르다. 지금의 학교현장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선진화된 성교육이 이뤄진다. 다만 생식에 대한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쉽다. 콘돔 사용법은 알아도 생리가 어디서 나오는 줄은 모른다. 요도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왜 피를 흘리고 왜 목소리가 변하는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상대방의 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존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Q. 해면 탐폰, 스펀지 탐폰, 울 탐폰 등 다양한 생리용품을 소개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모아보고 직접 사용해봐야 소개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촬영이나 여행으로 해외에 나가면 꼭 드럭스토어 들러서 어떤 용품을 파는지 수집했다. 대부분 여성인 제작진들이 돌아가면서 몸소 사용해보고 피드백 거쳤다. 장단점은 다 달랐다. 나에게 잘 맞는 것도 남에게는 안 맞기도 하고, 이달에 잘 맞았어도 그 다음 달에 사용하니 불편한 것도 있었다. 피부랑 비슷하다. 컨디션에 따라 다르더라.

Q. 그중 생리컵에 집중한 이유가 있나.

다른 것들은 모두 피를 흡수하는 방식이다. 반면, 생리컵은 피를 모으는 방식으로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 생리혈을 처리하는 방법으로서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생리컵을 사용하면 사실 몸 안의 피와 성질이 같은 변하지 않은 피를 볼 수 있다. 피를 모으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취재를 시작할 때만해도 생리컵이 지금처럼 이슈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와도 연관돼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선택지가 많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여러 옵션의 장단점을 알고 선택하는 상황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한 가지 뿐인 상황은 매우 다르다. 생리컵도 마찬가지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제작진 중에는 골반통 때문에 생리컵 못 쓰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 내 몸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Q. 해외 사례자들도 많이 만났다. 생리에 대한 인식 면에서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

동일한 것은 그들도 생리가 편한 주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차이점은 생리에 대해 굉장히 실용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서양의 경우 여성들도 축구, 농구 등 스포츠에 적극적이고 수영이 학교수업 포함돼 있다. 매번 생리 때문에 빠지기 보다는 실용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거다. 운동할 때 패드는 불편하니 자연스럽게 삽입형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Q. 최근 생리를 비롯해 여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성들이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영화제목을 '피의 연대기'로 지은 것도 '여성들끼리 이해하고 연대하자, 서로 용기를 내자'는 의미다. 관객들이 다들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를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친 여자들이 왠지 내 친구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만큼 공동의 경험이 의미가 있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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